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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에 대한 적극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입력 2023.08.30 06:06 수정 2023.08.30 06: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산업기밀 유출 피해...5년간 피해 금액 25조원

산업기술은 기업의 지식재산권 넘어 국가의 '안보 자산'

경제안전보장 해치는 산업스파이에 강력한 처벌을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대, 18개 시도경찰청 산업기술보호수사팀 등 인력을 투입해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이어왔다.ⓒ데일리안DB

한국은 국가를 배신하는 스파이에 대해 너그러운 나라인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첩’이 수만 명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문재인 정권은 아예 국가정보원의 수사권 폐지라는 자해극을 저질러 국가정보원 고유의 기능을 박탈했다. 국가정보원의 수사권 폐지는 시급히 복원되어야 한다.


산업스파이에 대한 대처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 산업스파이로 인해 입은 국가 산업기밀 유출 피해가 지난 5년간 93건, 피해액은 2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적발해낸 건수만을 추려낸 것으로 적발되지 않은 피해를 합하면 그 수가 훨씬 클 것임은 자명하다. 특허청은 매년 산업기밀 유출로 인한 국가적 피해액의 규모가 6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60조원이면 명목 GDP의 3% 수준이니 결코 좌시할 수 없다. 한국 기술 훔치기가 중국에선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말도 있다.

산업기밀 유출 피해...5년간 피해 금액 25조원

산업스파이에 대한 대처가 어려운 것은 산업스파이 고용 주체가 대한민국의 적국이 아닌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군사적 동맹국이라도 기술은 절대로 주지 않기 때문에 우방국의 산업스파이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도 있다. 이때는 그 스파이를 잡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산업기밀 유출 대상은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우리나라의 주력 분야인 첨단산업에 집중되어 있다. 첨단산업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그간 기술개발을 위해 쏟아부은 자금과 각고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한국 산업경쟁력의 약화는 물론, 국가 경제의 발전마저 저해하게 된다. 산업기술이 단순히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넘어서 국가의 ‘안보 자산’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이토록 중요한 산업기밀이 유출되어도 처벌 수준은 한심한 수준이다. 한국 사법부의 형량이 법관에 따라 들쭉날쭉, 도무지 일관성과 형평성이 없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국가를 배신한 자에 대한 처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그동안 산업기밀 유출로 처벌 받은 산업스파이들은 징역 1년에서 3년 반, 그마저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에서 적발된 산업스파이는 ‘산업기술보호법’이라는 특별법으로만 처벌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업스파이의 무죄 선고율은 20%에 달한다.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고도 가벼운 처벌만 받으니, 첨단산업 종사자로서는 외부의 금전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심지어는 훈장까지 받은 반도체 달인이 산업스파이가 됐다는 기사도 보인다.


다른 국가들은 산업스파이에 대해 빠르게 대처 중이다. 미국 FBI는 자국 내 중국 산업스파이가 10년 사이 1300% 증가했다고 밝히며, 지난해 영국 MI5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산업스파이의 위협에 대해 기업들에 경고한 바 있다. 더불어 산업스파이가 ‘간첩죄’로 가중처벌 받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본래 기술유출 범죄는 관련법에 따라 최대 18개월의 실형 선고만 가능했으나, 간첩죄 가중처벌이 가능해지면서 최대 33년 9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을 수 있게 됐다. 기존 대비 형량이 2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산업기술은 기업의 지식재산권 넘어 국가의 '안보 자산'

반도체 기술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추월하는 대만도 산업스파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법률을 개정해 산업스파이가 ‘간첩’ 행위임을 명시하고 그에 걸맞은 양형을 받도록 했다. 현재 대만에서 산업기밀을 유출하다가 적발될 경우 최대 12년의 징역과 42억원 이하의 벌금, 심지어는 사형까지도 선고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닌 형법 제98조 ‘간첩죄’를 개정하여 간첩행위에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포함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한국 국회가 언제쯤 개정 법안을 통과시킬지 하세월이다.


이처럼 산업스파이 처벌 강화는 요원한 가운데, 산업스파이는 더욱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전의 산업스파이가 기업에 재직 중이거나 퇴사한 후 다른 기업에 정보를 넘겼다면, 지금의 산업스파이들은 간접경로를 통해 정보를 넘기고 위험부담에서 벗어난다. 컨설팅 업체를 중간에 끼고 ‘자문’이라는 이름 아래 기밀을 유출하거나, 협력업체가 납품 샘플을 넘겨도 모른 척 넘어가 주는 식이다. 치밀해지는 산업스파이에 맞서려면 우리의 대응체계도 치밀해져야만 한다.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산업스파이를 제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양형기준 상향이다. 현재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에 의하면 산업기술을 유출한 자는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는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또 초범이라는 이유로 낮은 수준의 징역과 집행유예가 남발되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니, 산업스파이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저 형량을 지금보다 크게 상향 조정하고,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도록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경제안전보장 해치는 산업스파이에 강력한 처벌을

주요국처럼 산업기밀 유출행위를 간첩행위로 규정하는 형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 현행 형법은 간첩죄를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하는 행위와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산업 분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군사기밀 유출행위만을 간첩행위로 규정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외국’을 대상으로 한 ‘군사기밀’ 또는 ‘산업기밀’ 유출행위를 간첩죄로 정의하는 것이 옳다. 일본의 경우 공급망 강화, 기간산업 물자 확보,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한국도 유사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하면서 경제안전보장을 해치는 산업스파이에 관한 강력한 처벌규정을 두는 것도 고려하면 좋겠다.


범죄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범죄를 예방할 방안에 대해서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산업스파이들의 목표는 결국 돈이다. 연봉을 두 배로 높여 준다거나, 한 시간 당 자문료를 수백만 원씩 주겠다는데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본질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의 성과보수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아무 대가 없이 기술인력의 충성심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국가 산업기밀 유출 건수와 그 피해액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성과보수체계의 정착이 가장 효율적인 예방책으로 보인다. 퇴직 엔지니어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주고,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재활용하기 위해 반도체 생태계를 다양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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