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검찰 수사 죄어오자 “나 밥 안 먹어”
“단식하든 말든 수사는 진행된다”
판사가 그렇게 물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대답했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3부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재판을 위한 절차다. 15일 첫 공판이 열릴 모양인데 피고인 측의 태도가 이렇다.
YS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를 빌미삼아 날이면 날마다 정부를 공격하고 장외 데모를 주도하고 하던 이 대표가 지난달 31일 갑자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주장을 듣자하니 단지 오염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단식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끝장내겠다는 결의가 묻어난다.
그래서 단식을 하겠다는 것인데, ‘국민항쟁’이라면서 그 방법이 자신의 ‘단식’이라니 그 만담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윤 정부가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는 말부터가 허황할 정도의 과장이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선포를 하는 나라가 어디 있다는 것인가.
무기한 단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부터 해 줄 일이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단식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기한이 없는 단식이라는 말인가. 전자의 뜻으로 이해하자면 ‘죽어야 끝날’ 단식인 거고, 후자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멈출 수 있는 단식이 된다. 어느 쪽 단식인가?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8일간 단식투쟁을 한 바 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문해서 단식 중단을 종용하며 말했다.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또 황당한 것은 “단식 철회 조건이 없다”는 민주당의 입장 표명이다. 분풀이 노상 격투를 벌이겠다는 말이나 다르지 않다. ‘단식’은 목적 달성을 위해 행하는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 할 수 있다. 조건도 없이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목숨을 갖고 장난이나 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따위 협박 정치에 맛을 들이면 민주정치 회복은커녕 파괴만 초래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즉생,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 시절 단식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했다.
검찰 수사 죄어오자 “나 밥 안 먹어”
그는 두 김 전 대통령까지 끌어다 이 대표 옆에 앉혔다. 같은 목적으로 단식하는, 같은 레벨의 리더라는 뜻이다. 자신이 오래 모셨던 전직 대통령을 이 대표와 동렬에 세워가면서까지 빛나는(?) 아부를 실천했다. 총선 출마 욕심이 없다면 만 81세의 나이로, 까마득한 후배의 뜬금없는 단식에 추임새를 넣을 필요는 없을 텐데 하는 연민마저 느껴진다.
단식 선언의 까닭이야 뻔하다. 각일각 죄어오는 검찰의 수사에 숨이 막힐 처지가 된 것이다. 온갖 흰소리(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는 다 했으니 이제와서 불체포 특권에 의존하기는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무기한 단식’을 내지른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 자신은 물론 부인하고 있다. 자신의 단식 때문에 9월로 예정된 검찰 소환조사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처지 설명을 잊지 않았다.
혐의가 많으니 조사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대표이니까 혐의가 있어도 수사 및 기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이 대표 자신의 문제일 뿐, ‘우리’가 함께 견뎌내야 할 일은 아니다.
참 바쁘게 생겼다. 단식을 하랴, 검찰 조사를 받으랴, 재판정에 나가랴, 당무를 챙기랴. 아무리 바빠도 공천권은 단단히 틀어쥐고 있을 것이니까 배신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일 터이다. 똘똘 뭉쳐서 항쟁을 이어가면 윤 정부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투쟁을 통해 ‘우리편’을 결집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것으로 만사형통이다. 이런 말로 들린다.
차기 정권 쟁취가 유력해진 정당, 그 정당을 이끄는 이 대표 자신을 검찰이 아니라 누구든 감히 핍박할 수 있겠느냐는 배짱인 듯하다. 검찰도, 법원도 ‘사즉생’으로 덤비는 이재명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잠시만 인고하면 정국 조종간은 우리 손에 넘어 온다. 윤 정부에 당하기 싫으면 나의 배에 승선하라. 최후의 승리 쟁취에 한몫하고 싶다면 내 휘하에서 충성을 입증해 보이라. 이런 메시지에 거역할 민주당 의원들이 얼마나 있을까?
“단식하든 말든 수사는 진행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네 번째 기소, 사상 첫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머그샷(범죄인 인상착의 기록 사진)으로 공화당 내에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에서 탈출구를 발견했을 법하다. 핍박받는 직전 대선의 경쟁자, ‘정치적 기소’로 고통을 겪는 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곧 승리전략이다. 이야말로 자신을 검찰의 핍박에서 구하면서 다시 대선의 무대에 올려 세워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게 하는 묘약이라고 판단했을 만하다. 갑자기 퇴로 없는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고 나선 배경이 그것 말고 달리 뭐가 있겠는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가 단식을 선언한 날 “개인 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이냐. 워낙 맥락 없는 일이라 국민들께서 공감하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다. 이 대표가 단식 중 혼절이라도 해서(그렇게 우직하게 단식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지만) 병원에 실려 가는 사태가 생긴다면 상황은 정부 측에 불리해질 수도 있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대정당이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당 대표 방패 역할 밖에는 없어 보이는 민주당. △온갖 술수를 동원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로 당을 자신의 호위병(장기적으로는 대선 후보)으로 만드는 것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당 대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묻지 말라. 판단을 대표의 몫이고 우리는 눈 딱 감고 돌진할 뿐”이라는 극렬 추종자들.
이걸 일이랍시고 정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보수를 당당히 받아 챙긴다. 집단 무지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극렬 지지 세력은 그 돈을 마치 자기들이 만들어낸 양 주인행세가 하늘을 찌른다. 당 대표는 개인사에 정당 조직을 동원한다. 허세를 부리며 “방탄은 없다. 불체포 특권은 행사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 치다가 막상 검찰이 오라고 하자 당원들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안 끌려가려고 안달이다. “밥 굶어 몸을 가누기 어려운데 어떻게 출석해!” 이 정도는 이재명 대표에게 잔꾀 축에도 못 든다.
정치 부재의 상황에 정치적인 주장들이 난무하고, 정치적 행위가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 시절이다. 우리가 이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