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서 앙상블 역 출연...10월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당신의 꿈은 뭔가요?’ 흔한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꿈을 찾지 못했거나, 막연함에 대한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꿈’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매우 크다. 뮤지컬 배우 이승은 역시 자신이 정말 원했던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기에 앞서 잠시 주춤하던 시절을 겪었다. 다른 꿈을 쫓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꿈을 잃어버리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돌고 돌아 어렵게 다시 찾은 뮤지컬 배우의 꿈의 출발점엔 뮤지컬 ‘광화문연가’(2018)가 있었다. 이 작품은 그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꿈을 이어갈 원동력이 됐고, 그 안에서 롤모델도 찾았다. 그는 한결같은 밝은 에너지의 소유자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을 롤모델로 꼽았다. 부딪히고, 배움의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승은은 현재 ‘멤피스’에서 앙상블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 ‘멤피스’에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요?
전 작품이었던 ‘물랑루즈’를 하면서 ‘멤피스’ 오디션을 볼 좋은 기회가 생겼었어요. 사실 ‘멤피스’라는 작품을 잘 모르고 노래가 너무 좋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연습하고서부터 좋은 넘버뿐만 아니라 좋은 드라마까지 있어 자부심을 갖게 된 작품이에요. 또 같이하는 팀원들이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어서 덕분에 하루하루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캐릭터들을 연기하고 있나요?
저는 크게는 백인을 맡고 있고 터너 부인, 10대 소녀 역을 연기하고 있어요. 터너 부인은 철없는 40대로 설정했어요. 명품을 좋아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걸 좋아해서 매일같이 콜린스 백화점을 찾는 VIP죠. 10대 소녀는 행동함에 있어서 솔직한 순수한 아이로 설정했어요. 흑인과 백인이 엄격히 분리된 사회적 상황에서 흑인 노래를 처음 라디오로 접하고는 한번에 뿅 가버리고(?) 그 뒤로 겁도 없이 빌 스트리트에 놀러 가서 흑인 친구들과 같이 줄넘기를 한 친구이니까요.
-캐릭터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브로드웨이에 있는 원본 영상을 많이 참고할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원작에서 어떻게 캐릭터를 연기했는지 보고, 제가 가진 이미지에 맞게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설정했어요. 1950년 인종차별이 심할 때 시대 배경도 알고 있어야 하기에 관련한 영화도 봤고요.
- 관객 입장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씬이 바로 ‘대형 줄넘기’ 씬이었어요.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정도로요.
줄넘기 연습을 시작해보니 두 줄 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줄넘기하는 팀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더블더치 영상을 찾아보면서 원리를 연구했어요(웃음). 근데 말이 쉽지 도저히 해결이 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더블더치 영상 속 대표님을 직접 만나서 원데이 레슨을 받았어요. 그 후로 매일 연습하면서 성공률을 높여갔어요. 처음 성공했을 때는 다같이 안고 울기까지 했다니까요? 하하. 결국 우리가 해내다니 하는 생각에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아직도 저희는 공연 전에 줄넘기 연습을 하고 있어요.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또 연습하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펠리샤도 그렇지만 앙상블들 또한 고음이 많아요. 고음이 이렇게 많은 작품은 처음이라, 고음을 해결하느라 초반엔 고생을 좀 했어요. 합창 한 곡 부르는데 이렇게 땀이 나야 하나 할 정도로요. 그래서 ‘멤피스’ 음악 연습이 있는 날엔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고 가고, 끝나고도 연습실에 가서 연습하곤 했어요. 덕분에 좀 훈련이 됐는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줄넘기도 그렇지만 합창도 만만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더 재밌게 연습했던 거 같아요.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연습 기간동안 대본 리딩이 자주 있는 편이었고 다들 열려있는 배우들이라 서로의 호흡을 이해하고 잘 받아줘서 호흡 맞추는 과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멤피스’에서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와 그 이유는?
‘라디오’ 장면이요!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이 만나서 흑인들의 문화라고 볼 수 있는 줄넘기로 함께 노는 장면이죠. 편견 없이 어린 아이들이 놀이와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첫 공연 때는 씬 전에 너무 긴장이 돼서 눈물이 날 정도 였어요. 그만큼 성공하고 나면 어떤 씬보다도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직 ‘멤피스’를 보지 못한 관객에게 이 작품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웃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작품이에요. 가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나 가사가 슬픈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날 때가 있잖아요. 그게 또 엄청난 감동으로 밀려와서 하루의 활력이 될 때가 있어요. ‘멤피스’는 그런 뮤지컬이에요! 사람 냄새나는 뮤지컬 작품이라고 하면 될까요?(웃음)
-‘멤피스’에 출연하면서 어떤 것들을 배웠고, 얻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줄넘기를 하면서 ‘하고자 하면 못 할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꾸 줄넘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는 큰 지분을 차지하는 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올해가 데뷔한지 딱 5년이 됐더라고요. 원래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나요?
원래 무대 디자이너를 꿈꿨어요. 그래서 15살 때부터 미술을 배웠고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도 실내디자인을 전공했고요. 그런데 디자인을 배우면 배울수록 지치더라고요.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하겠고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커질 때쯤 친구가 뮤지컬과로 전과를 해보라고 권유했고, 졸업하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전과를 했는데 너무 잘 맞았어요. 사실 이전부터 노래와 춤을 너무 좋아했는데, 취미가 직업이 되면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도전하기 겁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지쳐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게 원동력이 돼서 계속 움직일 수 있더라고요.
-돌고 돌아, 진짜 꿈을 되찾은 거네요. 그래서 더 데뷔작 ‘광화문연가’가 특별했을 것 같은데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고 감사했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첫 작품이다 보니 조금 움츠러들어 있던 시기였던 거 같아서 그때의 제 모습이 좀 아쉽기도 해요.
-데뷔하고 5년의 시간은 어땠나요?
계속 배우고 부딪히고 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사회에 혼자 나와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겁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 사이에 제 가치관은 서서히 잡히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지만요(웃음). 지나고 봤을 때 후회 없는 5년이었어요.
-데뷔 이후와 지금, 이승은 배우가 느끼는 변화들이 있다면?
데뷔 직후에는 많이 작아져 있었어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거든요. 근데 지금은 각자의 매력이 다 있다는 걸 알겠어요. 그래서 무작정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나만의 매력을 찾아내는 것에 있어서 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힘든 순간은 없었나요?
코로나19 때였던 것 같아요. 당시 가족극을 하고 있었던 해였는데 지방 공연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다 취소됐었거든요. 그 시기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수입이 갑자기 끊겼었어요. 그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린 길이었던 것 같고 엄청 혼란스러웠던 거 같아요.
-그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일어섰는지도 궁금해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원동력이 됐어요. 좋아하고 욕심이 있으니까 몸이 지쳐도 그걸 이겨내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 시기에는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오래 붙잡고 있어봤자 긍정적인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 내려놓고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그냥 현재만 생각하고 저를 믿고 그냥 하던 연습을 계속하면서 배워보고 싶었던 현대무용, 탭댄스도 배우고 당장 하고 싶은 공연은 못 해도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했던 거 같아요. 저는 힘든 상황이 생기면 억지로 이겨내려고 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이고 제가 아프지 않은 선에서 계속 움직여요. 우울함에 빠져서 온종일 누워있기만 하는 건 절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보여주실지도 궁금해요.
저도 제가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기대돼요(웃음). 앞으로 공연 외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배우로서 뭔가 대단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후회 없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 늘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려고 합니다.
-꼭 참여해보고 싶은 작품,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와 그 이유는?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넥스트 투 노멀’이요. 작품을 봤을 때 엄청나게 빠져들어서 무대 위에 캐릭터들이랑 같이 아프고 같이 웃었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에요. 나탈리도 해보고 싶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다이애나도 연기하고 싶어요.
-롤모델도 있을까요?
(김)호영 오빠요! ‘광화문연가’를 두 시즌에 걸쳐 같이 했는데 오빠 에너지가 너무 좋아요. 매사에 자신감 있는 모습도 좋고요. 공연 전 스케줄이 있는 날에도 지친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호영 오빠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최근 배우로서의 고민거리들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할지 그게 고민이에요. 하고싶은 것들이 많아서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제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하하.
-마지막으로, 이승은 배우의 최종 목표를 들려주세요.
최종 목표를 생각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서 대답하기 어렵네요(웃음). 당장 가까운 목표를 말씀드리자면 저를 믿는 거예요. 그게 제 목소리에서 드러났으면 좋겠고, 또 그게 관객들에게 감동과 동기부여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