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가라완드, 지하철서 도덕경찰에 맞아 혼수상태”
노르웨이 본부 인권단체, 구체적 경위 담긴 보고서 공개
이란 정부 “저혈압으로 기절한 것” 반박 속 여론 통제
이란 소녀가 히잡 착용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장단속 업무를 하는 ‘도덕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9월부터 이란 전역을 들끓게 만든 이른바 ‘히잡 시위’를 촉발한 마흐사 아미니(22) 의문사 사건 이후 1년여 만에 도덕경찰의 횡포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노르웨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쿠르드족 인권단체 헨가우는 최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쿠르드계 소녀 아르미타 가라완드(16)와 관련해 구체적 경위가 담긴 보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일 수도 테헤란 남동부의 쇼하다역에서 가라완드는 친구 2명과 함께 열차를 탑승한 직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헨가우는 성명을 통해 “가라완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열차에 탔다는 이유로 제지됐고, 여성 경찰이 그를 밀쳐 넘어뜨리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라완드는 혼수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현재 삼엄한 보안으로 가족조차 면회를 거부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지하철 운영사인 테헤란 메트로가 공개한 이미지엔 한 소녀가 의식을 잃은 채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지하철 객차 안에서 플랫폼으로 옮겨지는 장면이 담겨 있을 뿐이다. 해상도가 너무 떨어져 쓰러진 소녀가 히잡을 썼는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소녀가 차 안에서 어떤 일을 당해 쓰러지게 됐는지 등 핵심 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
이란 정부는 폭행 의혹을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국영 IRNA통신은 “경찰과 (가라완드 간) 다툼이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사건 당시 지하철역 승강장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가라완드는 저혈압으로 쓰러진 뒤 열차 객실에 부딪혔다”고 전했다. 관영 파르스통신도 “이번 사건은 단순 사고였다”고 얘기하는 가라완드 부모의 인터뷰 영상을 내보냈다.
가디언은 그러나 “IRNA가 공개한 영상은 열차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 주진 않는다”며 “과거에도 이란 정부는 (사건 당사자) 가족의 강제 인터뷰를 공개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독립매체 이란와이어는 “가라완드의 병원 이송 때 ‘지하철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넘어진 환자’라는 (제3자의) 얘기를 들었다”는 의료계 소식통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기저질환으로 인한 의식불명”이라는 해명은 1년 전 아미니 사건 때와 판박이다. 지난해 아미니가 구금 중 사망하자, 정부는 “신경질환이 발병한 탓”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아미니 사망 사건은 히잡 거부를 내세운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왔다. 이란 정부는 시위 시작 석 달 만에 “도덕경찰을 폐지하겠다”며 유화책을 펴다 상황이 누그러지자 지난 7월부터 도덕경찰 활동이 재개됐다. 국제 앰네스티 등은 반정부 시위 강경진압으로 537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