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업황 악화 속에서도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 속속 성과
상승사이클 대비 선단 공정 투자 지속…연구개발 비중도 늘려
DB·LX도 반도체 기술 개발 확대…"글로벌 위상 강화 총력"
삼성, SK 등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한파'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원가 상승, 판매 가격 약세, 재고 증가 등으로 올해 조 단위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AI(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HBM(광대역메모리) 등 신규 수요는 뚜렷해 조만간 상승사이클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반도체 기업들은 초격차 기술 연구 뿐 아니라 선단 공정을 중심으로 한 시설 투자 확대, 기술 인재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핵심 경쟁력 제고로 글로벌 1위 위상을 굳건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PC, 서버, 모바일 시장을 정조준한 기술 개발과 관련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첨단 기술 성과는 올 하반기에도 두드러졌다. 최근 삼성전자는 8TB(테라바이트) 용량을 갖춘 휴대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신제품 ‘T5 EVO’를 출시했다. 8TB는 휴대용 SSD 중 가장 큰 용량이다. 1200만 화소 사진 216만장 또는 50GB(기가바이트) 크기 고화질 영화 160편을 저장할 수 있다.
9월에는 LPDDR(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 D램 기반 7.5Gbps(기가비트퍼세컨드) LPCAMM(저전력 LLP 모듈)을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모듈은 So-DIMM 대비 탑재 면적을 최대 60% 이상 감소시켜 PC나 노트북의 부품 구성 자유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배터리 용량 추가 확보 등 내부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AI, 고성능 컴퓨팅(HPC), 서버,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응용처에 활용될 수 있다.
12나노급 32GB DDR5 D램 개발 소식도 알리며 미세 공정 경쟁에서 삼성의 앞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32GB는 D램 단일 칩 기준으로 역대 최대 용량이다.삼성은 이 제품을 연내 양산할 계획으로, 데이터센터 등 전력 효율을 중시하는 IT 기업들에게 최적의 솔루션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반도체 혹한기 속 차세대 기술 개발 경쟁에서 잇따라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I용 초고성능 D램인 HBM3e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 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가치 제품을 말한다. HBM 수요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3분기 D램 사업이 흑자전환했다.
HBM은 1세대(HBM), 2세대(HBM2), 3세대(HBM2e), 4세대(HBM3), 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HBM3e는 HBM3의 확장 버전이다. SK하이닉스의 HBM3e는 어드밴드스드 MR-MUF 기술로 열 방출 성능이 기존 제품 보다 10%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부터 HBM3e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도 내년 HBM3e를 선보일 예정이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용 D램 최고속도인 초당 9.6Gbps(9.6기가비트)를 구현한 'LPDDR5T'도 기술 성과 중 하나다. 올 1월 개발을 완료한 이후 퀄컴과 호환성 검증 작업을 진행했으며 최근 16GB 패키지를 고객사에 공급했다. 이 패키지의 데이터 처리 속도는 초당 77GB로, 풀HD급 영화 15편을 1초에 처리한다. SK LPDDR5T는 스마트폰 성능을 극대화할 최적의 메모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PC, 모바일, 서버 등 주요 시장에 공급될 메모리 반도체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국내 기업들은 매출 감소 속에서도 시설 투자 비용을 늘렸다. 삼성전자는 DS(반도체) 부문에 1~9월 33조4408억원의 시설투자를 단행했다.
메모리의 경우 평택 3기 마감, 4기 골조 투자 및 R&D(연구개발)용 투자가 이뤄졌다. 특히 업계 최고 생산 수준의 HBM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진행중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평택 생산능력 확대 및 미래 대응을 위한 미국 테일러 공장 인프라 투자 등이 이뤄졌다.
이같은 투자는 반도체에서만 연말까지 47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역대 최대 규모로, 흔들림 없는 투자를 통해 '반도체 봄' 도래 시 가장 수혜가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SK하이닉스는 고부가 주력제품을 위주로 '선택과 집중' 투자를 진행중이다. 구체적으로 D램 10나노 4세대(1a)와 5세대(1b) 중심으로 공정을 전환하는 한편, HBM과 TSV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TSV(Through Silicon Via)는 D램 칩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상층과 하층 칩의 구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으로 연결하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을 말한다.
SK하이닉스는 "선단 공정 램프업과 HBM 투자 확대 등으로 Capex 규모는 올해 대비 확실히 증가하지만 우선순위를 고려해 증가분은 최소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월 SK하이닉스가 집행한 투자는 4조198억원이다. 이 같은 투자 집행 속도와, 올해 투자를 전년(19조원) 대비 50% 이상 감축하겠는 계획을 두루 고려하면 연말까지 투자 금액은 6~7조원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양사는 연구개발비용도 늘리며 반도체 업황 부진 속 초격차 기술 전략을 공고히했다. 삼성의 3분기 누계 연구개발비용은 20조7899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0.9%를 나타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 기간 3조1356억원의 연구개발비용을 투입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작년(11.0%)을 웃도는 14.6%다. 양사의 매출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연구개발비 비중을 늘렸다는 것은 업황에 상관없이 기술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팹리스(반도체 설계)·파운드리 기업인 DB·LX도 미래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팹리스 기업인 LX세미콘은 올 3분기까지 1726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집행했다. 2021년(1714억원)을 웃도는 수치다. 전방 산업 수요 부진 등으로 올해 3분기(누계) 618억원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는 있지만 차세대 기술 개발에는 흔들림 없는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연말 인사에서 이윤태 전 삼성전기 사장을 전격 영입함으로써, 부진한 사업 개선을 꾀하는 한편 포트폴리오 다각화에도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DB하이텍도 꾸준히 차세대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3분기 연구개발비용은 638억원으로 2021년(677억원) 수준에 육박한다. DB하이텍은 최근 팹리스 사업 물적분할을 단행, 파운드리와 팹리스 전문성 강화로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글로벌 수요에 발 맞춰 SiC(탄화규소), GaN(질화갈륨) 등 차세대 전력반도체 라인업 강화에 기술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