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개혁·개방 천명 中, 45년 동안 가파른 성장세
작년 전세계 GDP 속 중국 비중, 1994년 이후 첫 감소
‘세계의 공장’ 광둥성 둥관시 올들어 성장률 1.5% 그쳐
정부 시장개입, 부채증가, 출산율 하락 등 악재 수두룩
중국 경제성장이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 들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종식되고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했지만 중국 경제가 여전히 침체의 수렁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년 만에 처음으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등 통계지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전년보다 감소한 20%(명목 GDP 기준)로 집계됐다고 미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3일 보도했다. 중국비중 축소는 1994년 중국이 새 환율제도를 도입하면서 생산품의 달러화 환산가치가 하락한 이후 처음이다. 중국경제의 성장동력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피크 차이나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셉 럽튼과 베넷 패리시 JP모건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는 이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됐다"며 “여기에다 가계대출과 주택 과잉공급을 막기 위한 각종 대책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전 세계 GDP의 28.4%를 차지해 1위를 유지했다.
투자업체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쓴 '중국 상승세의 반전'이라는 기고문에서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2023년 2년간 1.4%포인트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보도했다.
중국은 1978년 12월 경제개혁·개방을 천명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덕분에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도 1990년 2% 아래에서 2021년 18.4%로 급등했다. 하지만 제로코로나 기조를 견지했던 지난해 내림세로 돌아섰고 올들어 감소세가 더 가팔라져 중국의 비중은 17%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샤르마 회장은 중국의 비중이 2년간 1.4%포인트 줄어드는 것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세계 GDP 증가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간 세계 GDP 증가분 8조 달러(약 1경 500조원)의 45%는 미국이, 50%는 신흥국들이 차지할 전망이다.
이중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브라질·폴란드 등 5개국이 해당 신흥국 비중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세계경제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부의 시장개입 확대와 부채 증가, 생산성 둔화, 노동력 부족, 외국인 투자감소 등이 중국경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피크 차이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중국의 대표적 도시 중 한 곳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다. GDP 1조 위안을 넘어섰던 둥관시는 해외 주문량이 곤두박질치면서 ‘경제 빙하기’를 겪고 있다. 둥관시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둥관시 GDP는 전년보다 1.5% 성장에 그친 8119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전국 평균 GDP 증가율 5.5%를 크게 밑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는 둥관시 성장률이 광둥성 가운데 ‘꼴찌’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2021년만 하더라도 둥관시의 GDP는 1조 932억 위안(8.5% 성장)으로 광둥성에서 광저우(廣州)·선전(深圳)·포산(佛山)에 이어 4위의 성장세를 보였다. 전국에서 15번째로 GDP 1조 위안과 인구 1000만을 동시에 달성한 도시로 각광받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의류·전자산업이 발달했고 세계 유명브랜드 제품이 '메이드 인 차이나' 마크를 달고 생산됐다. 연합조보는 "둥관의 전성기는 일단락된 것 같다"며 "글로벌 경제침체와 국내외 수요약세, 미국 금리인상, 미·중 무역전쟁으로 둥관에 있던 수출기업들의 주문량과 매출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경제도 올들어 3분기에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 지난달 다시 위축국면으로 돌아섰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1월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보다 0.1포인트 하락한 49.4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 49.8을 밑돈다. PMI는 50보다 높으면 경기확장, 낮으면 경기위축을 뜻한다. 중국 PMI는 9월 50.2로 6개월 만에 확장국면에 접어들었으나 10월부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중국의 성장둔화는 무엇보다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부문이 장기 침체에 빠져든 여파로 해석된다. 중국부동산정보회사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100대 부동산개발업체 매출은 547억 달러로 코로나19 봉쇄령으로 내려진 지난해 같은 달보다도 30%나 감소했다. 10월 전국 신규주택판매량 역시 20%가량 줄었다. 중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과 소비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판국에 저출산 현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 신생아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줄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00만명에 이어 올해 900만명선마저 위태롭다. 결혼을 꺼리는 비혼(非婚)도 증가세다. 지난해 초혼 인구는 1051만 7600명, 사상 처음으로 1100만 명 선이 깨졌고 출산 적령기 여성인구도 감소세다. 결혼할 여성이 줄고, 여성이 결혼도 잘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기피하니 신생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45년간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한 소비시장을 뒷받침하는 ‘인구 프리미엄’을 자랑하던 중국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는 셈이다. 노동인구는 한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 출생률 하락은 중국의 향후 성장둔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현재 세계 노동가능인구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다. 이 비율이 향후 35년에 걸쳐 10%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사정이 이런 데도 중국 정부는 친기업적이기는커녕 기업 규제를 골몰하는 탓에 성장동력 약화를 심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알리바바(阿里巴巴)와 텅쉰(騰訊·Tencet), 메이퇀(美團), 바이두(百度), 징둥(京東)닷컴 등 5대 빅테크의 시가총액은 불과 2년 새 1조 1000억 달러(지난 7월 기준)가 증발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타격과 정부규제를 우려한 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도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미국 애플, 스페인 패션업체 망고 등 글로벌 기업이 주축이 돼 중국 공장이전에 나섰지만 요즘은 수출비중이 높은 중국 본토기업까지 탈중국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용어설명
‘피크 차이나’는 중국 경제성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뜻의 신조어다. 미 정치학자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가 지난해 펴낸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책에서 중국 인구가 2022년 정점에 달했고 생산가능인구는 10년 간 감소해왔다며 중국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예상만큼 빠르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2023년 세계대전망’을 통해 지난해 중국의 출생률과 성장률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자 피크 차이나 논의를 심층보도하면서 관련 논의가 봇물을 이뤘다. 특히 2023년 3월 5일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2023년 성장률 목표치로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5% 안팎을 제시한 점도 이를 증폭시켰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 주요 2개국(G2)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거듭했으나, 이젠 성장 잠재력이 꺾이고 있다는 신호가 산견(散見)된다. 2022년 출생률은 1000명당 6.77명으로 가장 낮고, 인구(14억 1175만명)도 61년만에 처음 감소했다. 성장률은 3.0%에 그쳐 정부 목표치인 5.5% 안팎에 크게 못 미쳤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