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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발목잡기 '전가의 보도'가 된 탄핵 [정치의 밑바닥 ②]


입력 2023.12.11 06:00 수정 2023.12.11 06:00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법관 탄핵으로 '사법부 길들이기' 논란

이상민 탄핵 기각까지 5개월 수장 공백

'이재명 수사 검사' 탄핵, 보복성 의심

"제2, 제3 이동관 탄핵"…인사권 개입?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사진 오른쪽)와 임오경 원내대변인(왼쪽)이 지난달 28일 국회 의안과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정섭 수원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접수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전까지 탄핵은 명목상 제도였다.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대통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직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헌법 정신이 담긴 규정이었다. 대부분의 헌법 교과서에서도 탄핵은 '제도가 있다'는 정도의 짧은 기술만 하고 넘어갔다.


판도가 바뀐 것은 2004년 노 전 대통령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열렸고, 실제 탄핵이 이뤄지는 역사적 사건도 있었다. 탄핵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의 명백한 위반이 있고, 파면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는 이론이 판례를 통해 확립됐다.


문제는 '엄격하게' 운영돼야 할 탄핵 제도가 21대 국회에선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의 정략적 목적으로 전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2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이 첫 시작이었다. 당시 임 전 부장판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상태였음에도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탄핵소추안은 헌재에서 각하를, 임 전 부장판사 혐의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각각 선고됐다.


민주당은 최초의 법관 탄핵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했지만,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정작 탄핵안 동의 서명은 '백지'에서 이뤄졌다. 헌재 심리를 전제로 한 탄핵안은 논리적 귀결이 매우 중요함에도, 백지에 먼저 도장을 받고 나중에 내용을 채워 넣은 '졸속안'이었던 셈이다. "민주당의 사법부 길들이기 목적의 탄핵이었다"는 국민의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에도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였었다.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없다'는 반론은 무시했다. 이후 헌재 재판관 9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이 나왔지만, 행안부는 5개월 이상 걸린 심리 기간 동안 수장 공백을 피하지 못했다. 탄핵안을 국회에서 가결하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국정 운영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사례였다.


지난 9월에는 안동완 검사에 대한 탄핵안도 가결시켰다. 법관·국무위원에 이어 역시 최초의 검사 탄핵이었다. 9년 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밝혀지자 보복 기소를 했다는 게 이유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이정섭·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도 강행했다. 각각 '고발 사주 의혹' '불법 청탁 의혹'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위법과 중대 비위에도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로 처벌되지 않았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해당 검사들이 현재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 중이라는 점, 이정섭 검사가 '청와대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수사를 담당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본질은 민주당의 '보복 탄핵'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실제 이원석 검찰총장은 "검사를 겁박하고 검찰을 마비시키려는 협박 탄핵"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최근에는 탄핵을 통해 사실상 대통령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도 발견됐다. 민주당의 탄핵안 가결에 따른 수장 공백 사태를 피하기 위해 취임한 지 불과 3개월 밖에 되지 않던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자진사퇴를 한 것이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되던 상황에서 위원장의 직무정지는 그 자체로 행정 마비 상태를 초래할 수 있었다. 나아가 "제2, 제3의 이동관도 탄핵하겠다"는 민주당의 엄포가 현실화된다면 정부 견제를 넘어 대통령 인사권 개입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탄핵 남용이 전례로 남아 이후 국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탄핵이란 제도 자체의 중압감과 여론의 역풍을 고려해 정당들이 신중하게 판단했지만, 지금은 강성 지지층 여론이 정치를 덮으면서 그 취지가 무너졌다"며 "전례가 생긴 만큼 앞으로 한 석이라도 과반인 야당은 탄핵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이 볼 것"이라고 한탄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 탄핵, 단독법안 처리,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런 정치가 상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비상식의 정치가 쌓여갈 때 국회는 더욱 국민의 신뢰로부터 멀어질 것이고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탄핵 만능주의자, 의회 독재주의자, 오염된 민주주의자를 방조할 것이냐"고 덧붙였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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