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논란에 "부담감 없었다면 거짓말"
배우 김정현이 8년 만에 영화 '비밀'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비밀'의 대본을 받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장이 김정현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문구로 팬들에게도 적어주고는 했는데 '비밀'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만나니 흥미가 생겼다. 학교, 군대 등 폭력이 만연한 사회 속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여운도 마음에 들었다.
저예산에 촬영 일정도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다시 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비밀'은 잔혹하게 살해된 사체에서 10년 전 자살한 영훈의 일기가 발견되고, 그 이면을 파헤치던 강력반 형사 동근이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추적 스릴러로 임경호, 소준범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두 명의 감독은 엄마와 아빠처럼 역할을 분담해 현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졌다.
"임경호 감독님은 현장에서 스태프와 소통하는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셨고 소준범 감독님은 모니터 하면서 연기나 영화의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체크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역할이 확실히 나눠져 있었죠. 저예산이지만 스태프들은 굉장히 능력자 분들이셨어요. 그럴 수 있었던 게 임경호 감독님이 조연출을 굉장히 오래 하셔서 그 동안 '입봉하면 도와주겠다'라고 약속했던 스태프들을 끌어모아오셨죠."
동근은 사건 피해자가 자신의 학창 시절 친구 영훈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동근의 시점은 고등학생 시절과 현재를 오간다. 영훈은 동근의 정의로운 모습을 발견해 경찰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인물이다. 그러나 현재의 동근은 경찰서 에이스지만, 열정은 예전 같지 않다. 그 사이의 서사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동근이 어떤 계기로 타성에 젖은 경찰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특별한 서사를 만들진 않았어요. 동근인 과거의 일을 망각하고 지내다가 사건이 트리거가 되죠. 저는 동근이 과거에는 열심히 수사를 했더라도 오랜 시간 일을 하며 타성에 젖어있는 인물이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그래야만 과거의 일들이 망각의 죄책감으로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았거든요."
점점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과거 자신의 행동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 동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이 바닥을 친다. 배우 입장에서 감정 변화가 드라마틱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을까.
"어떤 작품이든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감정을 정리하는 작업을 해요. 저는 그걸 스코어링이라고 해요.감독님의 도움 받아 대본 안에서 어느 부분에서 자극 받고 어떻게 빌드업을 할 것인지 그런 지점을 정해놓는 거죠. 신을 차례대로 찍는 게 아니라 감독님이 피드백을 주시면 거기에 맞춰 감정의 변화를 맞춰 나가는 편입니다."
'비밀'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학폭, 군 폭력 등을 다루며 가해하는 장면의 표현 수위가 높고, 등장 빈도수도 잦다.
"제가 생각했을 때도 영화가 조금 폭력적이었어요. 넷플릭스를 비롯해 많은 OTT나 채널의 드라마들도 잔혹성을 띄고 있어 그 레벨을 올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극장의 큰 화면으로 보니 폭력적이고 수위가 센 것 같았어요. 감독님들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시나리오 안에서 잔혹성보다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들, 그런 일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결과물들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단면적으로 보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감독님들은 타협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고 하시더라고요."
김정현의 아역을 연기한 SF9 다원은 '비밀' 언론시사회 당시, 김정현의 연기를 관찰하고 연습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현은 당시를 떠올리며 "제 연기를 모니터링했다고 해서 등에 땀이 났다"라고 웃어 보였다.
"다원 씨와 현장에서 따로 붙은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당돌하게 연기를 잘 했더라고요. 다원 씨가 연기가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자극 아닌 자극을 받았어요. 저는 영화 보면서 칭찬은 못해줄 망정 '내 연기가 왜 이러지'이러고 있었거든요. 반짝거리는 열정이 참 예쁜 친구인 것 같아요. 오래오래 연기 잘했으면 해요."
김정현은 스스로에게 평가가 박한 배우였다. 한 번도 자신의 연기를 칭찬해 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연기를 향한 갈증을 배우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만족과는 또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연기를 아끼는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먼 것 같아요. 항상 더 잘하고 싶어서 아쉽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이 마음가짐을 지켜나가려 해요. '나 잘했다'라고 칭찬하는 순간, 스스로가 너무 별로일 것 같아요. 타인의 평가와 시선과 상관없이 평생 만족하지 않고 살고 싶어요.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제가 못하는 건 주변 분들과 팬 분들이 해주셔서 그런 부분에 감사함을 갖고 있습니다."
'비밀'은 김정현이 2021년 사생활 논란에 휘말린 후 첫 영화였다. 드라마 '학교 2017', '사랑의 불시착', '철인왕후' 등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며 상승세를 타던 중 일어난 이슈였다. 이에 김정현은 활동을 중단했고 지난 1월 MBC '꼭두의 계절'로 드라마에 복귀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중 앞에 서기까지 많은 부담감이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김정현은 다시 털고 일어났고 자신의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나갈 예정이다.
"아주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살면서 많은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 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도 새 모습을 찾은 것 같아요. 머물지 말아야 하는 게 삶이 아닌가 싶어요. 더 나은 사람으로, 인간 김정현으로 발전해야죠. 그 일을 망각한다는 게 아니라 기억하면서 생각해 봐야죠. 아직 저는 보여드리고 싶은 게 많아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건강하고 즐겁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