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탈당 이준석, 개혁신당 신년하례
"돼지 눈으로 세상 보니 돼지만" 날세워
이낙연 신년인사회에는 500여 명 몰려
'제3지대 단일화' 가능할는지도 관심사
국운(國運)을 좌우할 2024년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흔히 선거의 3대 요소를 인물·구도·바람이라고 한다. 이 중 총선에서의 중요성으로 따지면 '바람'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구도'이며, '인물'은 마지막이라고 한다.
맹자에 이르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지만, 총선에서는 반대인 셈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공천해도 '구도'가 좋지 않으면 표가 분산되며, 하물며 나아가야 할 때가 맞지 않아 역풍이 강하게 불면 낙선을 면치 못하는 법이다.
2024년 4·10 총선이 정확히 100일 앞으로 다가온 이 때, 지리 즉 '구도'를 살펴보면 어떤 상황일까.
새해 벽두부터 여야 양당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준석 전 대표가 주도하는 개혁신당(가칭) 지도부는 1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지하철로 서울역으로 이동해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신년하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은 "개혁신당을 하면서는 이상한 것으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민주적으로 잘 선출돼서 잘하고 있는 당대표 쫓아내겠다고 괜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며 "있지도 않은 비상사태라는 것을 만들어내 대한민국의 비상사태를 해결하기도 전에 당의 비상사태에 매몰돼야 하는 일은 개혁신당에는 없을 것"이라고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친윤석열) 세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도 "권력만을 노리는 패거리 카르텔이 자신들 뜻대로 안되면 상대를 패거리 카르텔로 지목한다. 돼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돼지만 보일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정치세력의 교체"라고 수위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를 완료한 개혁신당은 천하람 전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과 이기인 경기도의원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으로 삼아, 이달 중순까지 서울시당·인천시당·경기도당·대구시당·경북도당 등 5개 시·도당 창당을 완료한 뒤, 이달 내로 중앙당 창당까지 해낸다는 계획이다.
이준석 위원장은 신년하례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몇 주 전부터 조직본부를 꾸려서 지역구 후보로 출마할 분들을 추려봤더니 70~80명 정도가 모였다. 이 숫자가 나날이 확대되는 상황"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내에서 움직이는 분들도 각자의 정치적 일정에 따라 차근차근 합류할 것이다. 천하람 위원장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음 같아서는 핸드폰 통화목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자부했다.
이낙연, 행주산성에서 '신당 출정 선언'
"쉬워서 가려는 길 아니다. 가야만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
양당 분열 확실시…총선 '1여 다야' 구도
더불어민주당 탈당이 '초읽기'에 돌입한 이낙연 전 대표는 같은날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에서 세(勢)몰이 성격의 신년인사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 최성 전 고양시장,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 등 500여 명이 몰렸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올해는 우리가 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싸움은 국민께 새로운 선택지를 드리겠다는 세력과, 선택의 여지를 봉쇄해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세력의 한판승부"라며 "국민께 양자택일이 아닌 새로운 선택지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아울러 "그 길이 쉬워서 가려는 게 아니다. 그 길은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옳은 길이다. 가야 하는 길"이라며 "우리는 어렵더라도 옳은 길을 갈 것이다. 가야 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상 '신당 출정 선언'을 방불케 하는 연설이었다는 분석이다.
한 지지자로부터 '1당이 될 수 있겠느냐'는 외침이 나오자, 이 전 대표는 "여의도에 사는 사람들은 여의도가 우주 전체라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광화문에서 만나는 수많은 시민들은 '정치가 이대로면 안된다'고 한다. 그런 시민의 힘을 모으면 충분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이낙연 전 대표는 "잘해주길 바란다"는 짧고 싸늘한 말로 답변을 갈음했다. 민주당·국민의힘 여야 거대 양당의 세포분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관측이다.
총선을 100일 앞둔 상황에서 여야 양당이 각자 쪼개지는 대혼돈이 펼쳐지는 가운데, 관건은 총선의 구도와 관련해 이러한 여야의 세포분열이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과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중에 어느 쪽에 유리하느냐에 있다. 또 총선이 양자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은 물건너갔지만, '다자 구도'에서 치러질 것인지 아니면 제3지대가 결국 하나로 수렴해 '3자 구도'에서 치러질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여야가 각각 하나씩 분열해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정국이라는 관측 △기본적으로 야권 분열, 야당 난립의 상황으로 봐서 '1여 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여당에 유리하다는 관측 △반대로 '이재명 대표가 싫어서 야당을 못 찍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서 오히려 여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 등 전문가들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를 보내는 유권자가 '콘크리트 60%'"라며 "이 60%의 표가 한 곳으로 모이면 국민의힘이 필망(必亡)이지만, 여러 당 후보들에게로 분산될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에 그나마 활로가 보인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반대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한 이유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청년 세대와 호남, 출향민, 이낙연 전 대표 지지 세력의 이탈 등 대선연합군이 형성됐기 때문"이었다며 "이번 총선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연장전'이라고 본다면, 이 대표 지지 세력에서는 이탈이 거의 없는 반면 윤 대통령을 만든 '대선연합군'이 다 깨진 상황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낙연·이준석 신당'의 결합 가능성은?
김철근, 신당 사무총장…'역할론'에 주목
이준석 "상호보완 결합할 수 있어 기대"
이낙연 "대통령에 맞선 것 아무나 못해"
이낙연 전 대표와 이준석 위원장,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금태섭 새로운선택 대표 등이 한 자리에 모여 꽃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일렬로 서서 손을 맞잡고 들어올리는 '그림'은 가능할까.
이러한 '제3지대 대연합'이 만들어지면 '윤석열 대통령도 싫고 이재명 대표도 싫다'는 표심이 하나로 모여 위력적일 것이라는 관측과, 과거 바른미래당·민생당처럼 정체성과 지향점이 불분명한 '잡탕정당'이 돼서 오히려 망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정치권 관계자는 "역사적으로 보면 1992년 총선의 통일국민당과 2016년 총선의 국민의당은 '제3지대 단일화'를 통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면서도 "반대로 2000년 총선 때의 민국당, 2020년 총선 때의 민생당처럼 '잡탕정당'으로서의 성격이 더 도드라져보이면서 패망한 사례도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제3지대 단일화'의 현실성은 불분명하지만, 제세력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대로 '가능성'을 닫아두지 않는 모양새다.
이준석 위원장은 이날 신년하례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낙연 총리라는 분은 나와 성품이 다른 분이기 때문에 상호보완적 결합을 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내가 바른미래당에서 활동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당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하면 안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날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사무총장에 김철근 전 국민의힘 당대표 정무실장을 임명했다. 김철근 전 실장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과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분당됐던 시절 정통 '민주당'을 지켰던 고 박상천 전 대표의 계보로 분류된다.
이낙연 전 대표도 당시 박상천 전 대표와 함께 정통 '민주당'을 사수했던 일원이기 때문에, 김 전 실장의 사무총장 임명을 놓고 개혁신당이 '이낙연 신당'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이낙연 전 대표도 '이준석 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현직 대통령과 맞서서 할 말을 다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이 전 대표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