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중시 트럼프
北과 군축협상 나설 가능성
"비용 분담 의사 밝히고
전술핵 재배치 모색할 필요"
중국 견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 아닌 '관리'를 꾀할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북한과 핵군축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힘을 얻고 있다.
군축협상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30여 년간 이어져 온 비핵화 외교가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미국의 군축 접근법은 안보 측면에서 '기회'가 될 여지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군축을 위해선 핵균형부터 이뤄야 하는 만큼,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등을 미국에 요구할 '명분'이 강화될 거란 관측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1일 평화재단이 '2024년 국제 정세 전망'을 주제로 진행한 전문가 포럼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시작되는 게 핵군축 협상"이라며,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북한과 군축협상을 시도할 경우 "우리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 수석연구위원은 "핵군축 회담을 위해선 핵균형을 맞춰야 하니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하고, 그 비용은 우리가 분담하겠다고 하면 된다"며 "지금 바이든 행정부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여지'가 넓어지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국가 안보가 백척간두"라며 '조건부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핵균형 차원에서 미국 전술핵을 다시 들여온 뒤, 협상을 통해 상호 철수·폐기토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됨에 따라 워싱턴 조야에선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군축협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작년 10월에는 보니 젠킨스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이 공개적으로 관련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바이든 행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비확산 체제라는 '규범'을 강조해 온 바이든 행정부는 전술핵 재배치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본토 위협 감소와 비용 등 '이익'에 무게를 두고 결이 다른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무엇보다 향후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북정책의 '출발점'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는 평가다.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위에 집착하기보단 실효적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 수석연구위원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 못 해주지만,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현상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며 "북한은 버젓이 핵(무기) 수십 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냐"며 "다른 나라들이 '한국은 정말 호구'라고 볼 것이다. 북한은 벌써 수십 년 전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깨고 핵무기를 개발·배치했다. 남한을 핵으로 공격까지 하겠다는데 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하지 못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차 수석연구위원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파기할 시점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규정(탈퇴 조항)을 인용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밑에서 '잠재적 핵능력 확보' 관련 조치들까지 다양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워싱턴 선언 때와는 중요한 여건상의 변화가 있다"며 "워싱턴 선언보다 더 나은(진전된) 조치를 취해야 된다는 점을 미국에 요구하는 건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불가역적 핵보유'를 선언한 북한이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설정하고, 서울 핵공격은 물론 남한 점령까지 운운하고 있는 만큼, 선명하고 확실한 억지력 강화 조치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