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전기차 보조금 개편 행정예고안 발표
테슬라·폭스바겐·폴스타, 보조금 전액 못 받는다
보조금 전액 지원 기준 5700만→5500만 강화
주행거리 500km 미만, LFP 배터리 탑재시 차감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문턱을 대폭 높이면서 기존 보조금을 전액 지원받던 수입 전기차들이 올해부터는 절반만 받게 될 전망이다. 게다가 전기차 가격 인하 대안으로 지목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하거나 주행거리가 500km 이하인 전기차에 대해서는 지원 금액을 대폭 낮출 예정이어서 사실상 현대차, 기아만 수혜를 누리게 됐다.
6일 환경부가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체계가 대폭 강화된다. ▲1회 충전 주행거리 길고 충전속도 빠른 차량 지원 확대 ▲환경 부담 적고 재활용 가치 높은 배터리 차량 우대 ▲전기차 제작사 사후관리 역량에 따른 보조금 차등 강화 ▲충전 시설확충 혜택 확대 ▲경제적 취약계층·청년 및 소상공인 구매지원 강화 등의 내용이 골자다.
우선 보조금이 전액지원되는 차량가격 기준은 당초 5700만원 미만에서 5500만원 미만으로 강화됐다. 5500만~8500만원 미만 차량엔 50%만 지원하고, 8500만원 이상의 전기차에는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또 자동차 제작사의 차량 할인금액에 비례한 혜택(인센티브)을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
올해 신설된 내용으로는 주행거리에 따른 보조금 차등 지급 항목을 꼽을 수 있다. 전기승용차 성능보조금 단가를 100만원 감액하고 1회충전 주행거리에 따른 보조금 차등을 강화한다. 특히 중·대형 차량은 1회 충전 주행거리에 따른 차등구간을 500km까지 확대하고, 주행거리 400km 미만 차량 지원은 대폭 축소한다.
충전속도와 배터리 효율에 따라서도 보조금이 차등 지급된다. 충전 속도가 빠른 차량 구매 시 최대 30만원의 혜택(인센티브)을 제공받고, 차량정보수집장치(OBDⅡ) 탑재차량 구매 시 배터리안전보조금(2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또 올해부터는 배터리 재활용 가치도 보조금 지급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배터리 재활용 가치를 '배터리환경성계수'로 나누는데, 배터리 1㎏에 든 유가금속 가격을 '폐배터리 처리비'인 2800원으로 나눈 값이 0.9를 넘어서면 1이 된다. 이 경우 성능보조금(배터리안전보조금 포함)이 감액되지 않는다. 유가금속 가격을 2800원으로 나눈 값이 0.8~0.9인 경우에는 성능보조금이 10% 감액되는 등 배터리환경성계수에 따라 최대 40%까지 감액이 이뤄진다.
전기차에 적용되는 배터리를 두 분류로만 나눌 수는 없지만, 사실상 국내 전기차에 탑재된 NCM(삼원계 배터리),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중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축소하겠다는 의미다. LFP배터리는 원재료 가격이 저렴해 전기차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주행거리가 짧고, 재활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정선화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은 "최근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댑터 중심 초기 시장에서 일반 소비자 중심의 주류 시장으로 전환되면서 전기차 성능에 대한 눈높이가 한층 높아졌다"며 "전기차 안전·환경성 제고와 충전불편 해소 등 전기차 이용편의 개선에 대한 요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요건을 감안해 보조금 개편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개편안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정의하는 '성능 좋은 전기차'는 가격이 저렴하면서, 주행거리가 길고, 재활용 가치가 높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로 요약된다. 특히 지난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주행거리가 짧고, 재활용이 어려운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시장에 대거 출시되면서 이에 대한 업계의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에 현재 출시돼있는 전기차 중 수입 전기차가 대거 보조금 전액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게 됐다. 대표적으로는 테슬라 모델 Y RWD(5699만원), 폭스바겐 ID.4(5690만원), 폴스타2(5590만원) 등이다.
이들 모델들은 당초 보조금 상한선이었던 5700만원에 맞춰 가격이 책정되며 보조금 전액지원을 앞세워 홍보효과를 거뒀지만, 5500만원으로 기준이 강화되며 올해부터는 보조금을 절반만 지원받게 된다. 가격 조정이나 자체 지원금 등의 전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차량 가격을 보조금 전액 지원 기준인 5500만원 이하로 낮춘다고 해도 기존처럼 전액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배터리 재활용 계수와 주행거리 500km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 모델이 차량 가격을 5500만원 이하로 낮췄다고 가정했을 경우, 테슬라 모델 Y RWD는 주행거리가 350km로 500km가 되지 않는 데다 LFP 배터리가 탑재돼 보조금이 삭감되고, 폭스바겐 ID.4도 주행거리가 421km로 500km가 되지 않아 보조금이 깎인다. 폴스타2 역시 싱글모터 주행거리는 449km, 듀얼모터는 379km로 500km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당분간 현대차, 기아의 모델은 수혜를 누리게 될 전망이다. 가격대가 비슷해 경쟁하던 수입차 모델들이 대거 보조금 기준에 미달되면서다.
우선 현대차 아이오닉6의 경우 가격과 배터리, 주행거리가 모두 보조금 기준에 충족돼 최대 65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이오닉5는 가격과 배터리가 모두 기준에 충족하지만, 주행거리가 411km로 주행거리에서는 보조금이 다소 깎일 것으로 보인다. 기아 EV6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배터리 재활용이나 주행거리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가격 기준이 미달돼 보조금을 절반만 지원받게 된 수입 전기차보다는 차감 폭이 적을 가능성이 높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기아 차량과 비슷한 가격대의 수입 전기차들은 수입해서 들여온 차인 만큼 가격을 크게 낮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조금을 전액 적용받기 위해 가격대를 합리적으로 책정했는데, 이마저도 받기가 어렵게 됐다"며 "보조금을 최대한 많이 적용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은 오는 15일까지 행정예고를 거친후 내달 중순 구체적인 보조금 등이 확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