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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 조석래 별세] '선택과 집중'으로 IMF 넘어 일류기업 만든 승부사


입력 2024.03.29 18:46 수정 2024.03.29 18:49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36년간 효성그룹 이끌며 위기 때마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돌파

기술중시 경영으로 경쟁력 확보…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등 세계 1위

마지막 창립 기념사에서 "대변혁 시대 맞아 사고와 행동양식 전면 혁신해야" 당부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012년 9월25일 서울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한일산업기술 페어 2012’에서 연설하고 있다. ⓒ효성

29일 별세한 고(故)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36년간 효성그룹을 이끌며 각종 풍파에 직면했지만, 회사가 흔들릴 때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한 승부사로 명성을 떨쳤다.


1981년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으로부터 효성을 물려받은 조석래 명예회장은 1983년 당시 24개로 난립한 계열사들을 합병, 매각, 청산 등을 통해 8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전이 없는 사업부문은 과감히 정리하고 섬유, 중공업, 무역 등 당시로서는 유망 사업들만 남겨 동양나이론(현 효성 섬유PG), 효성중공업, 효성물산을 중심으로 통합한 것이다.


화공학을 전공한 조 명예회장은 ‘기술중시 경영’을 앞세워 각 계열사들의 경쟁력을 키워갔다. 공학도 특유의 꼼꼼함으로 제조현장을 찾아 세심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며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게 그의 경영 스타일이었다.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오른쪽 두 번째) 생산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효성

90년대 들어 섬유산업의 사양화로 사세가 기울자 조 명예회장은 또다시 혁신에 나섰다. 1996년 6월 21세기위원회와 제2창업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이듬해 전사 차원에서 혁신경영을 선포했다.


1997년 말에는 효성그룹 전 조직을 퍼포먼스그룹(PG) 체제로 바꾸고 책임경영 체제를 도입했다. 현재 주요 그룹사들이 경영효율화 차원에서 도입하고 있는 책임경영 체제를 20여년 앞서 정착시킨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효성이 한창 혁신에 나선 시점에 위기가 찾아왔다. 국내 30대 기업 중 16곳이 도산하던 IMF 외환위기에서 효성도 자유로울 순 없었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효성물산이 1조 원대의 적자를 내며 파산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조 명예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1998년 우량 계열사였던 효성BASF와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 중공업 부문의 효성ABB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4개 주력계열사를 (주)효성으로 합병해 몸집을 줄이며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효성은 파산위기에 몰렸다가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자구노력으로 회생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한국·중국·일본의 정계·재계 ·학계·문화계를 이끌어 온 지도자 30인에 선정돼 2006년 2월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30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효성

한때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랐던 효성은 IMF 여파로 40위권 밖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조 명예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에 힘입어 다시 20위권 수준까지 도약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은 줄었지만, 2000년대의 효성은 ‘알짜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최초로 자체개발한 스판덱스사업을 중국, 브라질, 터키, 베트남 등으로 확대해 2010년부터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달성했다.


타이어 핵심 원료인 타이어코드 사업도 전세계 시장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며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이후에도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 친환경 고분자 신소재 폴리케톤을 잇달아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는 등 신성장동력 창출 노력도 지속해 왔다.


고(故)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017년 10월 20일 항소심 1차 공판을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물론 조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의 오점도 남겼다. IMF 당시 효성물산이 낸 1조 원대의 부실을 10년에 걸쳐 나눠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세포탈과 횡령, 배임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2020년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 이뤄지긴 했으나, 별세가 임박한 시점까지 법정 공방으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자녀들의 경영권 다툼도 그의 말로를 평탄치 않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가 다른 형제들과 마찰을 빚고 회사를 떠난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은 보유 지분을 모두 팔고 효성과 사실상 연을 끊었다. 형인 조현준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효성그룹 총수로서의 조 명예회장의 삶은 2017년 7월 마무리됐다. 장남인 조현준 회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총수 자리를 내려놓기 몇 달 전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던 2016년 11월 3일 효성 50주년 기념사에서 조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ICT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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