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정책 발표 사과한 정부·대통령실
책임론 공방 이어졌던 4일…국민 불편 초래
해외 직구 논란 속에 ‘당정대 협의회’ 신설
소비자·업계 등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해야
정부가 해외직구 금지 정책을 나흘 만에 철회했다. 어린이 제품 등을 포함한 80개 위해 품목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인데 국내 소비자의 거센 비판에도 제대로 된 후속대책이 나오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 발표하며 어린이용품 34개 품목과 전기·생활용품 34개 품목의 경우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이 없으면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른바 ‘직구 금지령’으로 국내 소비자와 정치권은 과도한 규제와 소비자 선택권 제한 등이라고 비판했다. 거센 비판에 대통령실과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며 해외 직구 규제 대책 발표로 혼선이 빚어진 데 공식으로 사과했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지난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최근 해외직구와 관련한 정부의 대책발표로 국민들께 혼란과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 국내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해외 직구를 차단·금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그런 안은 검토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 마련은 국무조정실 주도로 진행됐다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부처 간 이견을 잘 조율하지 못했던 탓인지 일각에선 대책 발표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업계와 소비자들이 충분히 반발할 사안이었는데 문제가 될 것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며 “정책 실효성에 대해 더 고민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14개 정부기관 책임론 공방이 이어졌다. 면세제도를 담당했던 정부 관계자는 “국조실이 컨트롤타워로서 방향성을 잡고 제도를 마련했어야 했다”며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 업무를 담당했던 정부 관계자도 “여러 부처 간 의견 교류가 쉽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며 “부처 간 누구의 책임인가를 두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앞으로 위험 우려가 있거나 소비가 급증하는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해 각 소관 부처가 이를 직접 선별 구매해 안전성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조사·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린이 제품과 전기·생활용품을,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외품 등을 담당한다.
이들은 직접 해외 직구 제품을 선별·구입·검사하고 위해성이 확인되면 판매가 이뤄지는 온라인 플랫폼에 판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비자에게 정보를 알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정부의 일방적인 해외 직구 규제 발표로 빚어진 혼선과 논란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자 정부·대통령실·국민의힘은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협의회’를 신설했다.
협의회는 매주 한 차례 회의를 열고 정책 사전 검토, 국민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이같은 C커머스 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섰지만 최근 중국 직구 온라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어린이용 장신구에서 기준치의 278배에 달하는 중금속이 검출돼 소비자 안전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3일 쉬인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 중인 어린이용 시계 등 장신구 7개 제품의 안전성을 검사한 결과 2개 제품에서 중금속(납·크로뮴·니켈)이 나왔다.
특히 쉬인에서 판매 중인 어린이용 시계에서는 태엽 꼭지(용두) 부위에서 납이 기준치 대비 278배 초과 검출됐다. 시계 뒷면 금속 부위에서는 크로뮴이 3.4배, 니켈이 4.4배 초과 검출됐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판매 중인 어린이용 목걸이의 펜던트 금속 부위에서 기준치 대비 1.2배 많은 납이 나왔다.
이처럼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정부 정책 혼란이 계속되면서 소비자 불만과 우려는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KC인증 이외에 다른 대책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피해가 발생할 경우 즉시 조치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가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기 전 C커머스 업계들이 소비자피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바람직하다”며 “정부도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해외 직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