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자율 낮아져도 '뭉칫돈'
고금리 막차 타려는 수요 확대
홍콩 ELS 사태 등 불안도 영향
국내 은행들의 예금과 적금에 들어가 있는 돈이 2100조원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지난해 말부터 줄곧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음에도, 계속해 뭉칫돈이 몰리는 모습이다.
고금리 기조가 생각보다 길어지고는 있지만 이제는 정점을 지나고 있는 만큼 막차를 타야 할 때라는 수요와 더불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사태로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서 안전 자산으로의 역머니무브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20개 모든 은행들이 확보하고 있는 원화 예수금 총액은 2093조3357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2.1% 늘며 역대 가장 큰 금액을 경신했다.
은핼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원화 예수금 잔액이 342조2755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하며 최대였다. 이어 농협은행의 해당 액수가 1.8% 늘어난 301조1331억원으로, 300조원을 넘어서며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밖에 ▲하나은행(293조8235억원) ▲신한은행(292조7882억원) ▲우리은행(291조9652억원) ▲IBK기업은행(126조2948억원) ▲BNK부산은행(57조7452억원) ▲iM뱅크(54조4232억원) ▲KDB산업은행(51조5707억원) ▲SC제일은행(48조3188억원) 등이 원화 예수금 보유량 상위 10개 10개 은행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몸집을 불리는 은행권의 예·적금에 더욱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금리 추이와 상반된 흐름 때문이다. 예·적금에 돈을 넣어 기대할 수 있는 이자가 오히려 예전만 못해지고 있는 데도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권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3.83%로, 같은 해 중 최고를 나타냈던 전달보다 0.13%포인트(p) 낮아졌다. 연초인 지난해 1월과 비교해도 0.04%p 떨어진 수치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 한층 짙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은행권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3.53%로, 지난해 12월보다 0.30%p 하락했다.
이런 와중에도 은행권의 예·적금 수요가 확대되는 배경에는 앞으로의 금리 전망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이제 더 이상은 금리가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간 이어진 고금리 시기의 마지막 수혜를 누려야 한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유지 중이다.
여기에 더해 투자 위험을 최대한 피하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H지수 ELS 상품에서 불거진 조 단위의 손실이 논란이 되자, 은행 예·적금을 다시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움직임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일단 안전 자산에 자금을 맡겨두려는 수요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며 "금리 인하의 확실한 시그널이 나올 때까지는 시장을 관망하려는 움직임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