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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금융 밸류업을 가로막는 장애물 [기자수첩-금융증권]


입력 2024.06.14 07:00 수정 2024.06.14 07:00        고정삼 기자 (jsk@dailian.co.kr)

밸류업 선결과제 '관치 해소'

금융 혁신 치열히 고민해야

시중은행 자동화기기들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연합뉴스

네덜란드는 작지만 부유한 국가다. 인구는 1767만명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5985달러로 우리나라(3만2410달러)보다 1.8배가량 높다.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다국적 기업 동인도회사를 세우며 근대 금융 혁신을 주도했던 국가임을 떠올려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17세기 유럽의 강대국들은 거대 자본을 활용해 인도와 중국 등을 대상으로 무역에 나서면서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네덜란드는 타개책이 필요했고, 국민들에게 동인도회사의 지분을 주는 대신 자금을 조달한다는 개념을 구상해냈다. 이에 무역금융을 활성화하는데 성공했고,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네덜란드가 현대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은 네덜란드가 주도적으로 보여준 금융 혁신과 거리가 먼 행보만 보이고 있다. 금융사를 손아귀에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데만 여념 없다는 인상을 풍긴다. 정부는 지난해 은행권을 압박해 3조원에 달하는 '상생 보따리'를 풀게 했다. 올해도 은행과 보험사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사업장을 정상화하는 데 돈을 대도록 했다.


정치권도 이에 질세라 은행권 옥죄기에 나섰다.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횡재세를 도입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일정 기준 이상 이익이 발생할 경우 초과분에 세금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중과세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그릇된 카드를 재차 꺼내든 민주당의 아집이 아연실색케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에 대해 '갑질'과 '독과점'이란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삼성전자와 현대차만큼 혁신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기에 앞서 과연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혁신을 치열하게 도모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금융사들도 혁신이 무엇인지 감을 못 잡는 건 매한가지로 보인다. 나라 밖에 지점 몇 개 더 세워 소액 여신을 취급하고, 배달앱과 알뜰폰 사업에 뛰어든 것을 두고는 차마 혁신이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올해 금융그룹 회장들은 IT·가전 전시회 CES에 참석해 AI 혁신을 모색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만약 그 결과가 AI은행원이라면 정부에 해마다 수천억원씩 조공을 바치는 '종 노릇'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금융사의 이익을 너도나도 가져가겠다고 아웅대는 와중에도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AI에 힘입어 한 기업 시가총액이 웬만한 국가의 GDP와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정부와 정치권, 금융사들이 합심해 금융 혁신을 만들고, 이를 해외로 수출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모두가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계획을 내놓겠다고 예고해도 K-금융의 밸류업(가치 제고)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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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삼 기자 (j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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