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아랑곳하지 않는 가계부채
이자율 하락 베팅하는 '영끌 대출'
경제 구조 발목 잡는 무모한 용기
'성장판' 잃지 않도록 제동 걸어야
한 번 돈을 빌리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빚의 관성. 사람들이 더 많은 대출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유다.
그럼에도 최근 가계대출이 다시 꿈틀대는 현실엔 두려움이 앞선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5%로 10여년 만에 최고치를 찍고 있는 와중에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 나간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5월에만 6조원이나 늘었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감소를 기록하며 안정되는 듯 싶더니, 그 다음 달 즉시 증가로 돌아서더니 오히려 탄력이 붙는 모양새다.
이번에도 주범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조금 회복된다 싶었던 집 거래의 배경에는 역시 빚이 있었다. 몇 년 전 기준금리가 0%대일 때 전력을 다했던 영끌족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감의 배경에는 금리가 조만간 인하될 거란 예측이 깔려 있다. 지금의 이자율이 고점일 테니, 미리 변동금리로 대출을 당겨 놔도 괜찮다는 나름의 선구안이다.
하지만 이는 언제든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다. 당장 지난해 이맘때 나오던 예상대로라면 기준금리 인하는 이미 시작됐어야 한다. 당시 금융권은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해 연내에만 서너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질 걸로 내다봤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곧 금리를 내릴 듯 냄새를 피우면서도 그 타이밍을 계속 미루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불안 탓이다. 이 역시 1년 전쯤 전망이 맞았더라면 물가는 벌써 잠잠해졌어야 한다.
빚도 자산이라거나, 능력이 있어야 돈을 빌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맴돈다. 물론 틀리지 않은 말이다. 자산도 부채처럼 한번 불어나기 시작하면 관성적으로 커진다.
갚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반문도 있다. 앞으로 자신의 소득이 당연히 늘어날 거란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나라는 늘 그렇게 성장해 왔다는 신념이다. 직장을 가지면 내 집부터 마련해 놔야 한다는 충고가 이 사회에 격언으로 자리 잡게 만든 경험이다.
그러나 빚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월급에서 대출금으로 나가는 돈이 많아질수록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이 가파른 성장을 꿈꾸기 힘들어진 우리 경제의 구조를 고려하면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미래의 내가 충분히 이 돈을 갚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은 만용이다. 빚을 진 만큼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는 조언은 무책임하다. 역대급 고금리 터널 속에서도 사람들을 은행 창구로 향하게 하는 무모함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빚의 관성일 뿐이라는 안일함에 미래를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