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터널 속 대출의 질 악화 가속
몸집 불리는 2금융권 리스크에 '촉각'
농협과 신협, 수협 등 국내 3대 상호금융 지역 조합들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 가운데 아예 회수를 포기한 금액이 6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고금리 터널 속에서 대출의 질이 눈에 띄게 나빠지는 모습이다.
특히 고금리 충격의 최전선에 노출된 제2금융권으로부터 리스크가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농협·신협·수협 소속 전국 조합들이 보유하고 있는 여신 중 추정손실로 분류된 액수는 총 593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4.4% 늘었다.
추정손실은 금융사 입장에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로 구분해 둔 여신을 일컫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빌려준 돈인 여신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최하 단계에 속한다. 금융사는 해당 액수 전액을 충당금으로 잡아야 한다.
상호금융별로 보면 농협 조합들의 추정손실 여신이 4452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0.9% 증가했다. 수협도 495억원으로 해당 금액이 16.2% 늘었다. 신협 조합들의 추정손실 여신만 983억원으로 47.0% 줄었다.
이처럼 악성 채권이 쌓이고 있는 배경에는 고금리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높아진 금리로 대출 상환에 차질을 빚는 차주가 많아지면서 금융사의 여신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주는 형국이다. 상대적으로 취약 차주가 많이 찾는 2금융권인 상호금융권의 특성 상 대출 관리에 더욱 애를 먹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다.
문제는 높은 금리로 인해 여신 건전성 관리에 애를 먹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고금리 기조로 인해 이자 부담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비교적 서민들이 많이 찾는 상호금융권으로서는 여신 위험이 보다 심화할 공산이 크다.
계속 미뤄지는 금리 인하 타이밍은 대출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동결이 이어지면서, 한은으로서도 선뜻 통화정책 전환이 어려워진 실정이다. 연준은 지난 달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5.25~5.50%에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이렇게 부실의 골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대출 수요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상호금융권의 대출 건전성은 앞으로 더 나빠질 공산이 크다.
조사 대상 상호금융 조합들의 총 여신은 지난해 말 기준 498조926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조4262억원 증가했다. 상호금융별로 보면 농협 조합에서 나간 여신이 357조6607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0조6310억원 늘었다. 신협도 108조2153억원으로, 수협은 33조502억원으로 각각 2869억원과 5083억원씩 연신 보유량이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환경 상 2금융권 여신의 리스크는 추가 확대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부실 대출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이 더 큰 여신을 구분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