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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과하면 ‘독’…주체적으로 택하는 도파민의 순간 [도파민 탐닉 사회②]


입력 2024.07.25 14:02 수정 2024.07.25 14:02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적당하면 활력...과하면 무기력·우을증 초래

즉각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도 우려

디지널 디톡스·도파민 피킹 덩달아 주목

#직장인 박모씨(38)는 매일밤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한다. 다음날 출근 시간에 따라 취침 시간을 정해놓긴 하지만, 콘텐츠를 시청하다 보면 2~3시간이 마치 2~3분처럼 훌쩍 흘러간다. 심할 땐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박씨는 “‘자야지’하면서도 영상을 보면 중간에 끊기가 힘들다. 짧은 영상이 계속해서 연결돼 재생되는 터라 궁금해서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라며 “어느 순간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기분 좋게 시작된 영상 시청이었는데,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올 정도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최근엔 침대에 누울 땐 휴대전화를 탁자에 두고 눈을 감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파민은 적당히 분비되면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유기 화합물이지만, 과다 노출되다가 농도가 낮아지면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따라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거듭된 도파밍 현상이 ‘팝콘 브레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팝콘 브레인은 데이비드 레비(David Levy)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가 만든 용어로, 열을 머금은 옥수수가 터져 팝콘이 되듯이 아주 강렬하고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뇌 구조의 변형을 일컫는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멀티태스킹과 자극에 익숙해지면서 오프라인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생활에는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인데, 특히 쇼츠 영상의 경우 자극적인 영상을 볼 때 흥분을 일으키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이러한 자극은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팝콘 브레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3월 한국융합학회에 게재된 ‘중장년층 모바일 숏폼 동영상 과다사용 행위의 영향 요인 연구’ 논문에서 연구진은 “틱톡 매체 특성이 중장년층 사용자의 사용행위에 영향을 미쳐 몰입과 중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베이징대학이 숏폼에 과다 노출된 대학생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집중력 결핍이나 기억력 감퇴 등 뇌 기능 감소와 연관된 수동적 뇌 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미디어 매체의 자극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음식, 술, 게임, 쇼핑까지 도파밍의 현상은 일상 곳곳에서 보인다. 김소울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는 특히 미디어를 통한 도파민은 알코올 중독과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알코올을 통한 도파민 분비는 즉각적 쾌락과 이완감을 제공하며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면서 “중독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은 내성과 금단현상이다. 미디어와 알코올 둘 다 처음에는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느끼지만, 점차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자극이 소거되었을 때,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손떨림과 발한을 느끼듯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순간은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으로 채워진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단기적 보상을 추구하는 미디어 도파민 중독은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집중력 저하로 이어진다”면서 “미디어와 단절되는 순간의 불안감,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우울감 등 부정적 정서를 초래한다. 빠른 보상체계는 충동조절 능력을 저하시키는데, 이로 인해 일상에서도 더 큰 자극을 위해 위험한 시도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나혼자산다'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 중인 코쿤(코드쿤스트) ⓒMBC

위기의식을 느낀 젊은 세대 사이에선 도파민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도파밍과 반(反)도파밍을 선택하는 소비행태를 의미하는 ‘도파민 피킹’(Picking)에 대한 관심도 높다. 도파민의 순간을 직접 ’픽‘하는 흐름이다. 이른바 ’도파민 디톡스‘ ’도파민 단식‘도 이와 같은 흐름에서 나온 용어들이다.


도파밍 행위의 결과로 언급되는 디지털 중독을 이겨내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가 대표적인 도파민 피커들의 노력이다. NHN데이터의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디지털 디톡스 앱의 설치 횟수는 1분기 대비 64%나 뛰었다. 앱을 통해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하는 것이다. 최근엔 휴대전화를 맡겨야 입장이 가능한 카페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날로그적 콘텐츠 소비도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독서 열풍도 그중 하나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Z세대가 선호하는 책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의 도서 판매 기록이 세워졌으며, 도서관 방문율도 71% 증가했다고 한다. CNN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독서 모임 열풍에 대해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명상 공간을 찾거나, 자연에서 힐링할 수 있는 캠핑 등이 인기다. 짧고 굵게 즐기는 음악 콘텐츠 대신 LP나 테이프를 찾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엔 아날로그 오디오 문화가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한시적 유행에 머무르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도파민 디톡스의 한 과정으로 듣는 행위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오는 특별함을 택하는 추세다.


한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도파민은 뇌에서 기쁨과 보상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세로토닌과 더불어 ’행복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도파민의 보상 체계가 지나치게 자극되어 일상적인 행동이나 활동에 대한 만족감이 감소되고 더 강력한 자극을 끊임없이 찾게 만드는 ‘도파민 중독’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이어 “이와 함께 도파민 단식도 인기인데, 이는 MZ 세대의 주체적인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며 “도파밍 문화에 ’주체성‘이 가미된 것으로, 평소 성과와 효능감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도파민의 순간을 직접 선택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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