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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끝나자 드러난 간첩죄 '사각지대' [캐치미 이프유캔 ①]


입력 2024.08.09 00:00 수정 2024.08.09 00:00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형법·군형법·국가보안법에

마련된 간첩죄 관련 조항

'적' '반국가단체' 관련돼야 처벌

"냉전구도에서 만들어진 형사법제"

철조망 너머로 북한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다(자료사진). ⓒAP/뉴시스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가 대북요원 신상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조사를 받는 가운데 '간첩죄'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간첩죄 관련 조항이 길게는 70년 전 마련된 만큼, 시대상을 반영한 법체계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8일 국군방첩사령부가 이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군형법상 일반이적 및 간첩 혐의 등으로 A씨를 군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구체적인 범죄 사실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자세한 설명이 제한된다. 향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방첩사는 지난달 29일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군사법원은 다음날 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구속 9일 만에 방첩사가 뒤늦게 간첩 혐의를 추가 적용해 군 검찰에 송치한 셈이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방첩사가 뒤늦게 간첩 혐의를 덧붙였다는 데 주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황 이상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했다면 구속영장 청구 당시 간첩 혐의를 포함하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


기밀 유출 정보사 군무원
간첩죄 적용 '불투명'
北 연계성 입증이 관건


간첩죄 조항은 형법, 군형법, 국가보안법에 각각 마련돼 있다. 다만 '적국' '적' '반국가단체' 관련 사안에 대해서만 처벌이 가능하다. 중국 국적인 조선족에게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A씨의 경우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


앞서 재작년 4월 특수전사령부 소속 대위는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군사기밀을 넘기고 5000만원가량의 가상화폐를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바 있다.


법원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특전사 대위가 기밀을 넘긴 텔레그램 속 '인물'이 북한과 직접 연계됐다는 점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북한 공작원 추정 인물은 "일 없습니다"와 같은 북한 말투를 사용한 것이 확인됐지만, 법원은 북한 당국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냉전 시절 마련된 韓 '간첩법'
"국정원 업보도 있겠지만
안보·방첩 무관심 심하지 않나"


간첩죄가 북한에 초점을 맞추게 된 건, 도입 당시 국제정세와 안보환경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우선 냉전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적국인 북한과 연계된 간첩 사안에만 집중해도 충분했다는 평가다. 체제 경쟁이 치열하게 이어졌던 만큼, 간첩죄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졌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주변국들이 이제 막 발전 단계에 접어든 한국 내 정보활동에 무게를 두지 않았던 탓에 '북한 중심 간첩죄'가 큰 잡음 없이 운영된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우리나라 발전 속도에 탄력이 붙자, 중국·러시아 정보요원들이 대거 유입되며 상황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특히 한국 파견에 앞서 언어 유학 등을 고리로 북한과 연계된 인사들이 활동반경을 넓힘에 따라 간첩죄 조항의 '사각지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선 우리나라의 뛰어난 산업 역량 등을 겨냥한 각국의 정보활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국현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은 '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을 주제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형사법제는 냉전 구도에서 만들어졌고, 거기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며 "우방국, 적 구분 없이 다 들어와 있다. 우리 법제가 미비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 조직원들은 외국인을 활용한다"며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간첩죄 조항이 외국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전 국장은 "(국정원이) 대통령 업무보고와 국회를 통해 제도적 뒷받침을 해달라고 수없이 이야기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국정)원의 업보도 있지만, 안보나 방첩에 대한 무관심이 심하지 않은가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첩죄 관련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정치권 주목을 받는 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보사 군무원의 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혀 진전이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정보위 전체회의 진행 중 기자들과 만나 "여야가 아직 크게 입장차가 없다"며 "국정원, 여야 간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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