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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전기차 화재, '전기차 빙하기' 트리거 될 수도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4.08.09 11:04 수정 2024.08.09 11:04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주행, 충전중 아닌 단순 주차 상황에서 발생한 화재로 100억 피해

전기차 제조사, 배터리사가 '면피'에만 주력할 경우 차주가 덮어쓸 상황

전기차 구매 리스크의 극단 사례로 남을 경우 기피 현상 심화 불가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량들이 전소돼 있다. ⓒ연합뉴스



“전기차와 가솔린차 사이에서 고민 끝에 가솔린차를 택한 나에게 감사한다.”


지난 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로 심각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기사 댓글창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기차 구매는 시기상조’는 주장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전기차에 불나는 게 생소한 일은 아니지만, 이번 화재가 유독 크게 이슈화된 것은 그동안 우려됐던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의 위험성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다. 화재로 인해 해당 차량은 물론, 지하주차장 내 다른 차량 140여대가 불타거나 손상을 입었고, 아파트 설비들도 망가지면서 102세대 30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단지 내 5개동 480세대의 전기가 끊기며 수많은 주민들이 여러 날 불편을 겪었다. 전체 피해 추산액은 100억원에 달한다.


이 사고에 화재 차량 수입 판매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물론 국내에서 전기차를 판매하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 배터리 및 소재 업체들, 나아가 전기차 보유자와 잠재적 전기차 구매자들까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피해가 발생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해야 할 터. 아파트 단지 하나를 난장판을 만든 이 대형 사고의 책임자는 누구로 결론이 날 것인가.


주행 중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충전 중인 것도 아닌, 단순 주차 중인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니 일차적으로는 차량이나 배터리의 결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 타버린 차량에서 화재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인천경찰청 과학수사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인천소방본부 화재 조사팀 등으로 구성된 합동 감식팀이 화재 원인을 조사 중으로, 최근 화재 차량에서 배터리팩을 떼어내 배터리 관리 장치(BMU)를 확보했지만,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책임 소재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을 경우 배상의 주체도 모호해진다. 더구나 전기차 제조사는 독일 벤츠, 배터리 제조사는 중국 파라시스 에너지(Farasis Energy) 등 해외 기업들이라는 점에서 법정 공방과 배상 이행 등의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제조사 측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혹은 조사와 법정 공방과 배상 절차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사고차주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100억원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자동차보험 대물배상 한도는 10억원이다. 사고차주에게 그 이상의 배상 능력이 없을 경우 아파트 주민들은 피해를 보상받을 곳이 없어진다.


소비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이 대목이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전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올라앉을 상황까지 감수해야 하는가. 나아가, 전기차를 아무 탈 없이 몰고 다니더라도 이웃 주민들로부터 잠재적 위험물을 보유한 ‘빌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미 전기차를 지하주차장에 세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전기차 지하주차장 진입을 막는 주민들과 차주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인천 아파트에서 피해 주민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전기차 배척’ 분위기는 더 과열될 수 있다.


벤츠는 이번 화재사고와 관련해 한국 법인인 벤츠코리아는 물론, 독일 본사의 배터리 담당 전문가 까지 감식 현장에 투입했다. 어쩌면 이들은 명확한 기술적 이론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벤츠가 그렇게 100억원이라는 손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는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기차 구매가 패가망신으로 이어지고, 내 이웃의 전기차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일반화된다면, 그건 최근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을 불러온 가격 장벽이나 충전의 번거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극단적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번 사태는 특정 브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차 수요 정체를 ‘일시적’이 아닌 빙하기 급의 장기 추세로 만드는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사태의 한 복판에 벤츠코리아가 서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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