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모두 '외국'에 적용 가능
간첩죄로 처벌 어려울 경우
FARA 활용해 조치 취하는 美
中, 美보다 폭넓게 간첩죄 적용
대북요원 명단 등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의 기밀 유출 사건을 계기로 '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힘을 얻는 가운데 미국·중국 등 주요국 법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간첩죄 적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국가 안보 및 국익 차원에서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은 미 연방법(U.S. Code) 제18편 37장에 따라 외국을 위한 간첩활동을 처벌하고 있다. 관련 법에 따르면 '외국을 위해 정보를 입수·전달·사용'한 사람은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은 구체적 증거가 부족한 경우,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을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최근 미 연방검찰이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것 역시 FARA를 적용한 결과였다.
1966년부터 시행된 FARA는 2017년까지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7건밖에 없었을 정도로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캠프의 '러시아 스캔들' 관련 조사를 계기로 적용사례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FARA는 '외국 대리인'이 미국 법무부에 등록 후 관련 활동이나 금전적 보상 등을 보고토록 한 법이다. 외국 대리인이란 외국 정부·조직이나 외국인을 위해 국내 로비·옹호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 및 단체로 정의할 수 있다.
장석광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행 간첩법제의 문제점과 혁신방안'을 주제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근 주최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도 국가 기밀을 탐지·수집하는 행위를 간첩법으로 처벌하고 있다"면서도 "국익에 반하는 정보를 탐지·수집해도 국가기밀이 아니면 우리나라는 간첩으로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미국은 FARA로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북한 지령을 받아 각종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더라도 국가기밀이 아닌 경우 간첩죄 처벌이 불가능하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비공지성), 실제 국가기밀로 간주할 만한 정보(실질비성)여야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법체계에선 간첩죄가 '적' '반국가단체' 등에만 적용돼 북한이 아닌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는 처벌이 쉽지 않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은 간첩죄 적용 대상이 외국으로 확대돼 있고, 간첩죄로 처벌이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예비적 법률까지 준비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中, 안보·국익 침해시 간첩죄 처벌"
국정원, 中 여행객 대상으로
'조심하라'는 보도자료까지 배포
중국은 최근 반간첩법을 개정해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개정된 간첩죄 관련 조항은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 확대 △적용 범위 확대 △국가 안보기관 권한 확대 △간첩 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중국도 당연히 간첩죄를 외국인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국가 안보나 국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 미국의 간첩죄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적용한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작년 7월 1일자로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이 얼마나 강하냐면, 국정원에서 지난 6월 중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조심하라'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할 정도"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국가안전부는 지난 4월 26일 휴대전화·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대한 불심검문 권한을 명문화한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규정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이에 국정원은 지난 6월 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중국 당국의 전자기기 불심검문 권한이 강화된다며 "중국 당국이 중국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에 대해 '국가안전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 국민의 채팅 기록·이메일 수발신 내역·사진·로그인 기록 등 민감 개인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집하고, 구류·벌금 등의 신체·경제적 불이익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 사용이 금지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해 공개적으로 이용할 경우 불심검문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해달라는 설명이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정보요원들을 만나보면 중국에서 활동하기를 상당히 상당히 꺼려한다"며 관련 법체계를 강화한 중국 내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美, 韓에서의 中 간첩활동에
큰 우려 가질 개연성 커
간첩죄 범위 '외국'으로 확대하고
한국형 FARA 도입도 검토해야"
일각에선 국제사회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로 양분되는 경향이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헐거운 간첩죄'가 동맹 및 우방국과의 공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간첩죄 처벌이 약한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다"며 "지금 미국이 중국의 한국 내 간첩 활동에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그럴 개연성이 아주 크다. 이러한 개연성은 한미동맹 관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법체계에선 북한과의 직접적 연계성이 확인돼야 간첩죄 처벌이 가능한 만큼, 법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넓히는 것은 물론, 한국형 FARA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은 반간첩법 제정과 관련해 외국으로부터 '좀 지나치다' '너무 광범위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았다"면서도 "중국 대변인은 '모든 국가는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어떤 국내법이라도 통과시킬 권리가 있다'고 강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원한 우방일 것 같은 미국도 한국 정보기관의 협조자를 FARA로 기소했다"며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