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하려고 2시간 태운 정부… 진짜 전기차 대책은 언제쯤 [기자수첩-산업IT]

'전기차 화재 예방' 정부부처 머리맞댄 결과는

배터리 제조사 권고·스프링쿨러 확대

불 나야 허둥지둥 회의… 탁상행정 몸소 증명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에 대해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를 꼽으라면 단연 인천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가 폭발해 40여대의 차량이 전소됐고, 화재 여파로 아파트의 수도배관과 전기 배선이 녹아 단전·단수로 이어져 추산된 피해액만 무려 100억원 이상이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재난이다.

이 사고 이후 전기차를 판매하는 제조사는 모두 다 한번씩 욕을 먹었다. 화재를 낸 차량의 제조사인 벤츠는 거의 몰매를 맞다시피했다. 하도 전기차를 사라기에 샀던 사람, 구매를 고려했던 사람들이 하마터면 내 일이 될 수 있는 사고였기에, 크게 배신당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재난과 같은 사고가 일어난 지 무려 13일 만. 주요 정부부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국무조정실이 주관하고 행안부,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차관과 소방청 청장이 참석해 '전기차 화재 예방방안'에 대해 긴급회의를 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2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배포된 회의 결과는 행안부, 산업부, 환경부, 국토부 차관이 굳이 한자리에 모여 내놓은 결과물이라기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대책은 앞으로 수립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대책이 세워지기 전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 긴급점검'을 추진하겠다고 내세웠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는 권고하지 않아도 이미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분위기였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은 이미 감식 과정에서 문제시된 얘기였다. 새로울 게 하나도 없다.

제조사가 배터리 원산지를 공개하면 전기차 화재 예방이 될까? 이런 내용을 권고하기 전에 정부가 논의했어야 하는 대책은 지난 6월 국토부, 산업부, 환경부가 협력해 내놓은 전기차 배터리 서비스 육성방안에 포함된 '전기차 배터리 성능 진단 서비스' 같은 방안이었다. 전기차 화재가 나기이전부터 정부에서도 배터리 안전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위한 서비스를 낼 예정이었다는 점을 어필했어야 했다.

환경부가 내놨던 '화재 예방형 충전기'에 대한 지원도 그렇다. 이 충전기를 어떻게 확대해 나갈지, 전국에 얼마나 빨리 구축할 지, 이 충전기를 구축하는 업체에 얼마를 지원할지 등 제조사가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 '제조사 배터리 공개 권고' 같은 방안을 낼 거였다면 굳이 바쁜 발걸음을 할 게아니라, 전화 통화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업계에서도 정부의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에 아쉽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제조사가 배터리 공급처를 공개한다고 해서 전기차 화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에서 이번엔 화재가 났지만, 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라고 해서 화재가 안 난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은 암호화돼있는 배터리 실시간 온도 정보 등을 충전업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량 배터리 온도에 따라 충전기가 충전 중 꺼지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작돼야 해야한다는 것이다.

전기차 화재로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보여주기식 회의'로 잠재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여러 부처가 만나서 머리를 맞댔는데도 이런 결과가 도출됐다면, 서로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 힘 있는 부처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지 않았을까. 어제 회의 후발표한 '앞으로 세울 대책'에서는 부디 깊은 고민과 진정성이 담겨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