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전'·'구르미 그린 달빛' 등
로맨스 사극 이어, '혐관' 로맨스로 돌아온 임예진 작가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 ‘녹두전’ 등 로맨스 사극을 통해 ‘애틋한’ 사랑을 그렸던 임예진 작가가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를 통해선 ‘혐관’(혐오 관계)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현대로 배경을 옮기며 ‘현실감’을 덧입혔지만, 18년 만에 다시 사랑을 이뤄가는 커플의 ‘애틋함’이 어떤 차별화 된 재미를 선사할지, 임 작가의 장점이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는 tvN에서 토일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원수의 집안에서 같은 날 같은 이름으로 태어난 남자 석지원(주지훈 분)과 여자 윤지원(정유미 분), 열여덟의 여름 아픈 이별 후 18년 만에 재회한 원수들의 전쟁 같은 로맨스로 5% 내외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 역사적 비극 위에, 조화롭게 풀어내는 로맨스 서사
2015년 ‘후아유-학교 2015’의 공동 집필로 데뷔한 임 작가는 당시 열여덟 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학생들이 겪는 솔직하고 다양한 감성을 담아냈었다. ‘학교’ 2015년 버전인 이 드라마는 운명이 뒤바뀐 쌍둥이 자매 은별과 은비(김소현 분)를 중심으로, 1년 전 정수인(정인서 분) 사망 사건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파헤치며 여느 ‘학교’ 시리즈와는 다른 재미를 선사했었다.
이 과정에서 따돌림의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 왕따 문제를 현실감 있게 다뤘으며, 은별(김소현 분)과 이안(남주혁 분), 태광(육성재 분) 등 세 청춘의 삼각 로맨스로 풋풋함도 느끼게 했다. 이들이 각자 꿈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삼각 로맨스의 향방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청소년 드라마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자아낸 것이, 이 드라마의 강점이었다.
김민정 작가와 공동 집필한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궁중 로맨스 장르에 도전했다. ‘한 나라의 세자가, 내시와 사랑에 빠졌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츤데레’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남장 내시 홍라온(김유정 분)의 로맨스를 그렸다.
왕세자와 세도가의 권력 암투도 물론 흥미진진하게 그려졌지만, 왕세자 이영과 민란의 수장 홍경래(정해균 분)의 딸 홍라온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주는 애틋함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호평 이유였다. 우정에서 시작해 풋풋한 감정을 싹틔우고 나아가 절절한 관계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그려졌고, 익숙한 듯 새로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재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며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몰입시켰다.
이후 미스터리한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장동윤 분)와 기생이 되기 싫은 반전 있는 처자 동동주(김소현 분)의 발칙하고 유쾌한 로맨스를 다룬 ‘녹두전’에서도 자연스러운 완급 조절로 애틋함을 배가했었다. 초반 발랄한 로코에서 시작한 ‘녹두전’은 인조반정을 둘러싼 후반부로 나아가며 점차 무게감을 더했는데, 이때 녹두와 동주가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묵직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내 호평을 유발한 것. 비극적 서사 위에, 두 청춘의 애틋한 감정을 적절하게 풀어내는 임 작가의 장점이 발휘된 것이다.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 또한 18년 전 서사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현재’ 관계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다. 배경은 바뀌었지만, 또 어떤 깊이 있는 서사로 깊이감을 더할지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