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쟁점법안 ´속도전´에 제동 입법전쟁 불참 암시
박 측 "인사차 만났을뿐"…청와대 "해빙기 살얼음일뿐"
8개월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서먹서먹했다. 아마도 박근혜 전 대표의 생일이 아니었다면 분위기는 더 냉랭했을 것이다.
2일 청와대 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도중 박 전 대표는 간간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표정도 그리 밝진 않았다.
이 대통령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대화를 이끌면서 농담을 건넸고, 박 전 대표는 주로 듣기만 했다.
2일은 박 전 대표의 생일이기도 했지만, 2월 임시국회가 개회한 날이다. 청와대는 회동 날짜를 잡으면서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밤 SBS 토론회에 나와 “박근혜 전 대표도 정치를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위기 때 협력하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토론회에서 미디어법 등 이른바 ‘MB 개혁법안’에 대한 2월 국회 처리를 여당에 강하게 주문했다.
2일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앞두고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압박하는 뉘앙스도 풍겼다.
2일 오찬회동에서 이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다. 박 전 대표의 생일을 주제로 한 화기애애한 장면들도 나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생일’은 ‘생일’이고 ‘현안’은 ‘현안’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주어진 발언 시간에서 “2월 쟁점법안 처리가 예정돼 있는데,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사회통합도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이 된다”고 할 말을 다했다.
또 “정부가 바라보는 쟁점법안에 대한 관점이나 야당과 국민이 보는 관점이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런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어떤 점이 옳고 그른가, 국민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 토론하고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여당 지도부의 쟁점 법안 처리 속도전에 재차 제동을 건 것으로 이 대통령이 주도하는 ‘입법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친이’ ‘친박’ 진영 간에 대립 구도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회동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3일 기자에게 “어제 오찬 모임은 (친이-친박) 화합 분위기를 만든다는 그런 목적보다는 신년을 맞아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인사차 만난 모임”이라며 “다른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만한 성격이 못 된다”고 일축했다.
2일 오후에는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마치 내가 한 자리라도 요구한 것처럼 브리핑했다”며 별도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해명까지 했다.
이 대변인이 거두절미하고 김 의원의 “우리에게 기회를 주면 역할을 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한 발언만을 전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우리가 공감대를 형성해서 같이 가자는 것을 대통령 앞에서 충정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한 줄로 돼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이동관 대변인의) 이런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다치게 한다. 신중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친이’ ‘친박’ 두 세력 간에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3일 기자들과 만나 “봄이 오고 해빙이 올 때 얼음이 한꺼번에 녹느냐. 녹는 과정에서 살얼음이 약간 남아있고 그런 것”이라며 “(나는) 녹는 것에 방점을 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녹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세력 간에는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다. 입춘인 4일을 하루 앞두고도.[데일리안 = 김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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