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노무현 검찰행 버스의 슬픔과 4․29 참패 숨은 교훈
권력의 부패바퀴가 던지는 궤멸과 추락의 명령 체계 명심
"권력은 국민을 위해 있어야 한다." 이 지극히 당연한 말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2005)라는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금융기관이나 기업파산이 아니라, 유동성 위기나 신용위기를 넘어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와 권력의 부정부패 나락에 추락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확신적 포기에 빠져 국가사회는 물론 개인적 인생까지도 버리게 된다. 글로벌 금융난국으로 민생경제의 주저앉음, SI(멕시코 인플렌자)로 ‘팬데믹(Pandemic) Phase 6’ 직전까지의 공포 분위기, ‘불신-부패-부정‘, ’무책임-무능력-무원칙, ‘허영-허세-허욕’ 등 ‘ㅂ’, ‘ㅁ’, ‘ㅎ’ 돌림병의 난무, ‘저성과-저성장-저의욕’의 ‘ㅈ’자 걸림돌의 절망 앞에 또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이 부정부패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었다.
국민들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통곡하고 싶은 심정으로 또 목격해야 했다. 어쩌면 차라리 13년 6개월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목대장이 더 좋았다. 하던 대로 자가용을 타지 버스는 또 뭔가! 노란 돼지 저금통의 낚시질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도덕성으로 무장한 개혁 이미지의 몰락, 글로벌 경제난국 후폭풍에 휩싸인 민생의 절망이 교묘하게 교차되어 대한민국의 서글픈 통곡 소리가 전국에 울러 퍼졌다.
“면목이 없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이제 끝나야 하고,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꼭 6년 시간의 간격이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적 안타까움이다.
면목(面目)은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을 말한다. 그러면 속모습은 따로 있다는 말인가? 얼마를 먹으려고 그는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리고 신뢰사회를 걷어찼을까? 기어이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서민을 통곡하게 만들어야 했나?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을 왜 그렇게 자세하게 보였을까?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민생의 가슴에 꼭 ‘대못질’을 해야 시원했을까?
생존에 찌든 민생의 가슴에 꼭 ‘대못질’ 해야 했나
역사는 항상 권력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사람들을 숨기지 않고 진실과 정의 앞에 밝히고 만다. 아둔한 인간들이 스스로를 영웅으로 착각하고 그 나락의 수렁텅이에 기꺼이 빠져든 든 얘기를 처연하게 들려준다. 이것이 시간의 흔적인 역사이자 ‘시간의 보복’의 출발이다. 그래서 항상 역사의 교훈은 예지력와 통찰력을 남기려고 애쓴다.
어쩌면 권력이란 인간 삶 전체를 놓고 보면 날카로운 비수가 분명하지만, 안타까운 수많은 민초(民草)들을 끊임없이 밟고 고통의 질곡으로 내몬 피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권력은 서글픔과 질곡을 전제하고 있다.
질곡(桎梏)이란 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인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는 차꼬와 수갑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즉,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시사한다.
그래서 질곡은 반드시 가해와 피해, 비통과 참혹, 갈등과 분단, 풀뿌리 민초들의 수탈, 역사 인식, 아픔, 환멸과 환난, 암울과 궁핍, 전쟁과 정쟁, 이전투구, 불화와 다툼, 구속과 삶의 끈질김, 자아 상실, 해원(解寃), 역사적 진실, 영원한 생명과 존재의 본질, 통찰과 예지, 통한과 수난, 위기와 굴곡 등의 도전과 응전에 따른 ‘시간의 보복’과 연계된다.
국민은 권력자의 올곧은 강렬한 카리스마 원해
해방 후 지금까지 청와대 질곡의 역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권력은 국민이 잠시 위정자에게 양여한 헛물이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통치권력은 국민 소유의 천부적․헌법적 권리를 보상(補償) 없이 일시적으로 대통령에게 위탁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권력자는 자연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전하기 위해서 국민과 함께 써야 하고, 자신 한 몸의 이익을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거나, 실망시키는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해야 한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항상 부정부패의 유혹과 함정 가까이에 있다. 권력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오만의 배타적 이기주의로 타락한 돈과 안타까운 명예가 제일이라는 저속한 야합에 물드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참다운 권력자는 익숙해진 짜릿한 자극감이나 한방을 덧내는 쾌감, 그리고 일시에 몰입시킬 수 있는 선전선동의 레토릭(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헛구호)에 빠지는 것을 가장 먼저 경계한다.
오만의 배타적 이기주의로 타락한 돈에 젖어
역사를 통하여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위대한 국민이 있다. 역사적으로 전직 국가수반 등 수많은 국가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조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반에 커다란 감화와 실용적 가치를 선제해 왔다.
그들은 국정최고책임자 자리를 물러나 조용히 역사의 평가와 심판을 기다리면서, 인권, 독재타도, 가난, 환경, 질병, 국제범죄, 대량학살무기 등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국민과 소통하고, 자신의 명예를 걸고 ‘더 좋은 삶, 더 나은 인권’ 등의 새로운 역사창조에 매진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전직대통령들은 어떤가? 분쟁 조정 해결사가 아니라 사회갈등 조장을 스스로 자처하고 나선다. 문제 해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 눌러 앉아 없는 문제를 도리어 만들고 있다.
성공한 전직 국가수반이 되려면 항상 겸손한 태도와 포용을 유지하고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인권과 인류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직 국가지도자라는 책임 아래 항구적인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실천하는 자세와 겸손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전직대통령들은 정작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국민들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이야 어떻게 사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직 대통령을 독재자까지로 물고 늘어지는 ‘야비한 근성’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겠소?”, “대왕의 권위를 크게 세우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과 손숙오(孫叔敖)의 문답이다. 명재상 손숙오는 임금의 권위가 뚜렷하지 못하면 안으로는 백성들이 믿음을 잃게 되고, 밖으로는 각국의 업신여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진언했다. 그러면서 권위를 잃는 지름길은 부정부패라고 단언했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의 역사적 교훈이 2009년 4월 말에 우리에게 던진 너무나 가치적인 시사점이다. 그동안 안으로 지난 대통령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믿음을 잃게 만들었다. 밖으로는 지난 30년 동안 국민이 일군 대한민국의 웅비하는 이미지를 스스로 업신여김을 당하게 했다.
조국을 고질적인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킨 대통령은 저격당하고, 군정 대통령은 둘 다 부패로 영창에 들어갔다. 최초 문민대통령은 IMF로 국가를 도산시켰으며, 좌파정부 10년은 오락가락 국론분열과 김정일 독재의 배만 채워주다가 대다수 자유민주 국가의 비웃음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또 전직 대통령 하나가 검찰청사에 불려갔다.
전직 대통령 중에는 퇴임 후에 계속 현 정부를 비난하고, 국민들을 이간질시키며 사회갈등을 조장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위대한 국민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듯이, 멀리는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인도 간디, 호치민 전 베트남민주공화국 주석, 가까이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강택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주룽지 전 총리,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매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 등 많은 전직 국가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조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가난, 환경, 질병, 국제범죄, 대량학살무기 등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국가명예를 안고 ‘더 좋은 지구, 더 나은 인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만 이런 훌륭한, 역사에 책임을 지는 전직 대통령은 없을까? 성공한 전직 국가수반이 되려면 항상 겸손한 태도와 포용을 유지하고 국가 발전에 대한 미래비전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인류 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직 국가최고책임자라는 사명 아래 항구적인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실천하는 자세와 겸손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