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히로인 수애의 첫 베드신 도전으로 이슈를 모은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대역 논란’에 휩싸였다. ‘예고편이 전부’라고 웃어넘긴 수애의 말과 달리 본 영화 속엔 수애가 연기한 명성황후의 전라 뒤태가 1~2초가량 등장한 것.
연출을 맡은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작품으로만 봐 달라’며 수애 대신 팔을 걷어 부치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애매모호한 태도가 오히려 대역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그리고 한 매체는 대역 촬영을 시인한 영화 관계자의 말을 빌려 그들의 ‘거짓말’을 입증했다.
여배우의 베드신은 대중들에게 항상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때문에 ‘XXX가 벗었다’는 원초적인 ‘노출 마케팅’은 지금 충무로에서 가장 손쉽고도 ‘핫’하게 쓰이는 홍보 방법이다.
지난 주 예고편을 공개한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도 마찬가지. 1분여에 불과한 짧은 티져 영상이지만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남녀 주인공 손예진과 고수의 베드신 덕택에 ‘손예진 또 벗는다’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광고 효과 제대로 봤다.
그러나 자칫 지나친 노출 마케팅은 작품의 본질을 간과하고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이를 연기한 배우에게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집요하게 노출에만 초점 맞춘 시선들 때문에 주연배우 전도연에게 공개사과하고 ‘더 이상 노출 신은 안 찍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해운대>로 부활한 강예원 역시 데뷔작 <마법의 성>의 누드 열연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갖고 이름까지 바꿔 컴백했다.
심지어 한 여배우는 노출 수위 때문에 고민하다 거절한 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감독의 작품으로나마 못다 이룬 ‘노출의 한’을 풀어보려 했지만 흥행실패는 물론 사람들의 기억 속에 ‘헐벗은’ 몸만 남겼다.
이러한 위험 부담으로 인해 여배우들은 베드신 촬영 시 얼굴이 화면에 잡히지 않는 각도에서 종종 대타를 세운다. 이 경우 여배우의 노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 하지만 노출 마케팅의 파급력을 익히 잘 아는 그들은 대역 여부를 의도적으로 숨기며 직접 소화했다고 밝히는 잘못된 관행을 계속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배우들이 노출 신을 앞두고 어디까지 드러낼 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문서화하는 것처럼 대역을 쓸 때도 대역 부위뿐만 아니라 대역 여부 자체를 영화 홍보가 끝날 때까지 함구할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청순한 이미지의 한 여배우는 영화 속 예상치 못한 베드신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극중 나신과 본인의 몸이 너무 달라보여 대역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그녀에겐 제작사로부터 대역 촬영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함구령이 떨어진 상태. 영화판의 ‘불문율’을 지켜야 했던 그녀는 ‘예쁘게 봐달라’며 에둘러 답했지만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임수정의 경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엔딩에서 알몸처럼 보이는 다소 점잖은 베드신을 연출한 적 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사회 직후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지자 노코멘트로 일관했지만 대역이라는 추측이 대세를 이뤘다. 그리고 이후 차기작 <행복>의 홍보활동 중 그녀는 ´전작에서 대역을 썼다´는 사실을 결국 털어놨다.
사실, 배우이기 앞서 여인으로서의 사적인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나친 ‘신중함’을 무턱대고 옹호하기엔 성적 수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몸을 불사르는 프로들이 충무로엔 너무도 많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과 <미인도>의 김민선은 극의 흐름상 꼭 필요하다며 대역도 마다한 채 파격 정사 신을 소화했고 <쌍화점>의 송지효와 <박쥐>의 김옥빈도 시나리오 상 강도 높은 성애 장면이 있었음에도 감독의 뜻을 무조건 수용했다.
관객 앞에 떳떳하지 못한 배우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까닭은 유독 여배우에게만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도 한 몫 한다. ‘겁 없는’ 열연을 감행한 그들에게 야릇한 눈길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내며 영화를 영화로만 보는 성숙한 문화 의식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