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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입력 2010.07.15 10:46 수정         이종근 기자 (myjockey@nate.com)

<칼럼>7.14전대 끝난 여권 쑥대밭 추스르기는 갈등 원인 직시부터

´권력사유화´ 논란과 ´공천권´ 갈등, 덮어두기보다 드러내야 치유

정치는 참 어려운 부문이다. 경제 사회 문화 다른 제 부문보다 간단치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는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다른 제 부문이 다 포함돼 있다. 경제가 잘못돼도 정치 탓이고 사회가 어지러워도 정치가 욕을 먹는다.

정치가 욕을 먹는 것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정치를 하는 행위 주체는 장삼이사의 일반 국민이 뽑는다. 정치가들이 프로야구 선수들이라면 국민들은 스스로를 구단주요, 감독이요, 일반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뽑은 선수가 출전할 땐 감독이요, 구단주로 응원을 하거나 야단을 치고 내가 뽑지 않은 선수가 나올 때는 관객처럼 싸늘한 시선으로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한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없지만 또 누구나 한마디 씩 혹평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는 칭찬 받긴 어려워도 욕을 먹긴 참으로 쉽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백가지 잘한 일보다 한가지 못한 일이 담석처럼 굳게 자리잡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정치가가 칭찬받는 것이 불가능한 걸까.

1960년대 시인 김수영은 ‘풀’이라는 시를 통해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중략)...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고 노래했다.

정치가는 바람에 맞선 풀이 아니라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되어야한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바람보다 먼저 누워야’ 하고, 국민들의 고통을 먼저 알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어야’ 하며, 어쩔 수 없이 위기를 맞이했을 땐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야’ 한다.

6.2 지방선거가 끝난후 40여일 동안 헝클어진 쑥대밭이던 여권이 7.14 전당대회와 청와대 개편을 통해 전열을 정돈하고 있다. 선진국민연대와 ‘영포회’가 거론되는 ‘권력사유화’ 논란으로 불거진 친이계간 갈등과 앞으로 닥칠 공천권을 둘러싼 친이-친박 갈등이 여권의 바람대로 무난하게 해소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상처가 있는데 치료하지 않고 덮어두면 고름이 생기고 끝내 온몸으로 화농이 번지게 된다. 처음엔 ‘빨간약’으로 소독해야하고, 그 시기를 놓쳤다면 환부를 도려내야할 일을 그도저도 다 놓치고 목숨이 위태롭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권력사유화’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 정책 집행에 결정적 누가 될 수 있는 중차대한 ‘상처’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빨리 일어서야’ 한다.

전당대회를 통해 11명의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화합을 노래했다. 화합의 대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친이와 친박 양 계파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합창한 화합이라는 대의는 역설적으로 지난 2년간 그러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그 안엔 18대 국회의 공천 결과에 대한 트라우마와 곧 다가올 19대 국회의 공천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까놓고 이야기하자. 친이-친박 갈등은 그 때의 공천 갈등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당시를 되돌아보자.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과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이 숫자상으로 20여년만에 만나는 시기였고 대선이 총선보다 3개월 먼저 치러지는 상황이었다.

대선을 승리한 사람은 그 승리를 바탕으로 총선을 자기사람으로 내세워 국회를 장악하려하고픈 ‘유혹’에 들 수 있는 절묘한 시기였다. '승자독식'의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정치가가 얼마나 있을까. 하여간 일은 벌어지고 사단은 그곳에서 터져나왔다. 원인을 안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다행인지는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이번엔 대선보다 총선이 먼저 치러진다. 대선과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번과 같은 ‘전횡’은 불가능할 것이다.

7.14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안상수 신임 당대표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진 이유는 지금까지의 ‘강경’ 이미지로서의 칼을 버리고 엉킨 갈등의 고리를 잘라낼 칼을 드는 새로운 ‘해결사’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뜻이다.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어야’ 한다.

정치는 앞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일이 전개되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앞이 안보이면 희망은 생겨날 수 없다. 앞이 안보이는 것만 문제인가. 너무 뻔한 앞날도 문제다. 보나마나 일이 이렇게 되겠지. 그럼 이렇게 전개될거야. 그 다음엔 이렇게 밖에 되지 않겠지. 이런 앞날이라면 보여주지 않음과 다름 없다.

더 이상 바람에 휘둘리는 정치를 보고 싶지 않다.

이종근 기자 (myjockey@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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