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 감독 선임 시 구조적 한계 또 드러나
협회-여론-지연 등 자유로운 외국인에게 다시?
허정무 감독이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사상 최초의 원정월드컵 16강 위업을 이루고 물러났을 때도 대한축구협회는 후임으로 국내파와 외국인 지도자를 놓고 다양한 논의와 저울질을 했다.
일각에서는 이제는 굳이 명망 있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지 않고 국내 지도자에게 계속 대표팀 지휘봉을 맡겨도 세계적인 수준의 팀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논리로 국내 지도자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반면, 허정무 감독의 원정 월드컵 16강의 성적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한국 축구는 여전히 전술과 경험 면에서 선진 축구를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신임 대표팀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프로축구 경남FC 감독으로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도민구단인 경남을 전술적으로 짜임새 있는 팀으로 키워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육성한 조 감독의 지도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평소 대표팀 감독으로서 축구팬들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던 조 감독은 취임 이후 준비된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여러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추구하던 스피드 있고, 세밀한 패싱 게임을 바탕으로 하는 조광래식 스페인 축구는 팬들 사이에서 이른바 ‘만화축구’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와 같은 별칭에는 실제 조 감독이 그리는 축구가 완성된다면, 한국 축구가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가 녹아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조 감독은 당초 목적지인 브라질에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경질된 상태다. 축구협회가 조광래 감독을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과정은 분명 세계 축구계에서 웃음거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처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일단 물은 엎질러졌고, 빠른 시간 내 이를 수습하는 것이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의 최우선 과제다. 당장 내년 2월 쿠웨이트와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 최종전을 치러야 하는 대표팀 일정상 신임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을 느긋하게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축구협회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조광래 감독이 경질될 당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국내외 지도자 가운데 누구 한 명도 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 만큼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축구협회로서는 그야말로 ‘제로베이스’에서 선임 작업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전과 같은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허정무-조광래 등 최근 두 명의 국내파 대표팀 감독을 경험해 본 결과를 놓고 본다면 한국 대표팀의 새 사령탑은 국내파보다는 외국인 감독이 선임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조광래 감독의 경질 과정을 떠올려 보더라도 한국 축구는 여전히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외부의 입김이나 선입견이라는 면에서 국내파 지도자 보다는 외국인 지도자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언론과의 비판적 거리 내지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를 지키는 것도 국내파 지도자 보다는 외국인 감독이 조금 더 유리한 면이 있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감독 선임 이후 과거 그 어느 지도자 보다 소신 있는 대표팀 운영을 위해 축구계뿐만 아니라 팬들을 향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선수 발탁에서도 이런저런 불만제기에도 소신에 따른 선택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 감독 조차 이런저런 소문과 부정적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부 언론과 축구팬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조 감독이 유럽파들을 맹신한 나머지 팀 내 활약상이나 컨디션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차출하면서 혹사시키고 있다거나, 몇몇 대표급 선수들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이들을 차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해당 선수들을 차출하지 않는데 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거부감을 드러낸다는 얘기도 나왔다. K리그의 능력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데 인색했다거나 하는 평가와 소문들이 나돌기도 했다.
물론 과거 히딩크 감독이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등 외국인 감독들도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이런저런 부정적 평가와 논란의 주인공이 되곤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와 같은 문제들에 비교적 초연하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여전히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선수 선발에 관한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조광래 감독도 선수 선발 내지 발탁에 분명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여론의 압박에 밀려 특정 선수를 대표팀으로 불러들이는 듯한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반면, 외국인 감독의 경우 선수 개개인의 성장사나 이름값 보다는 최근 소속팀에서의 활약상이나 컨디션에 초점을 맞춰 발탁하고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의 선수를 찾는데 집중할 수 있다. 좀 더 폭넓은 선수 발굴이 가능한 장점이 있는 셈이다. 외국인 지도자가 국내 지도자들보다 한국 축구에 대한 세세한 정보력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선수들의 기량에 관한 한 '보이는 것에 대한 믿음'에 충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중시되고, 한 사람만 거치면 거의 모두가 선후배로 연결될 뿐 아니라 그런 선후배 사이가 끈끈하기까지 한 국내 축구계에서 선수 선발에 대해 선입견도 없고, 학연-지연과 같은 연고에 대한 부담 없이 선수를 발탁할 수 있는 위치. 그것은 사실상 외국인 감독 외에는 가질 수 없는 메리트인 셈이다.
새 대표팀 감독 선임을 앞두고 ‘국내 지도자냐, 외국인 지도자냐’라고 하는 해묵은 질문지를 받아 놓고 있는 한국 축구. 이번엔 외국인 지도자에게 바통을 넘겨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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