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사태 후]‘폭탄 돌리기?’ 지휘봉 누가 잡나
대안 없이 무리한 경질 후폭풍
물망 오른 후보자들 모두 고사
갑작스럽게 경질된 조광래 감독 뒤를 이어 누가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될 것인지를 놓고 여론이 분분하다.
축구협회가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전에 무리하게 현직 감독을 경질했다는 지적을 듣게 되면서 명예롭게 추대되어야할 국가대표팀 사령탑 자리가 이제는 ‘폭탄 돌리기’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축구대표팀은 내년 2월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있다. 혹시라도 패한다면 월드컵은커녕 최종예선에도 나가지 못할 수 있다. 새 감독 입장에서는 데뷔전부터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인 데다 전임자가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밀려난 과정을 지켜본 뒤라 부담이 따르는 만큼, 선뜻 감독 제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협회 입장에서도 조광래 감독을 절차에 어긋난 방식으로 경질하며 여론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후임감독으로 그보다 경력에서나 경험에서나 검증된 인물을 데려오지 못할 경우, 자칫 더 큰 역풍을 맞게 된다. 2004년 성적부진으로 쿠엘류 감독을 경질하고 본프레레 감독을 불러왔다가 오히려 3류 감독 논란에 휩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감독 후보군의 폭을 좁히는 이유다.
축구협회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12월까지 후임감독 선임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새로운 감독이 쿠웨이트전까지 팀을 추스르고 선수들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촉박하다. 자연히 한국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외국인 감독은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후임감독 후보군에 오른 국내 인사들도 잇따라 고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북 최강희 감독, 올림픽대표팀 홍명보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거절 의사를 밝혔다. 현재 맡고 있는 팀을 이끌기도 벅찬 데다 무리하게 감독직을 떠맡는 모양새도 부담스럽다.
궁여지책으로 다가온 2월 쿠웨이트전에만 한정해 ‘임시 감독 ’을 맡기는 방안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경우 현직 사령탑을 맡고 있는 감독이 한시적으로 국가대표팀을 겸임하는 것도 가능하다. K리그 감독들의 경우, 현재 시즌이 끝난 상태라 쿠웨이트전이 열리는 2월까지는 대표팀을 겸임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 소속팀을 포기하면서 국가대표팀을 떠맡아야한다는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결코 임시 감독의 책임은 아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과 호주 국가대표팀, 2010년 러시아 대표팀과 잉글랜드 첼시를 동시에 지휘한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도 2002년 김호곤 감독과 2004년 박성화 감독이 후임 대표팀 사령탑이 공석인 시기에 친선평가전을 한두 차례 임시로 지휘한 경우가 있다.
‘임시감독’ 체제가 가능하다면 파격이나 실험보다는 안정이 최우선 되어야한다. 대표팀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선수단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검증된 경험을 지닌 감독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전북 최강희 감독과 올림픽대표팀 홍명보 감독, 그리고 인천 허정무 감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최강희 감독은 올 시즌 전북의 K리그 제패를 이끄는 등 누가 뭐래도 현재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지도자다. 홍명보 감독은 현재 대표팀 주축인 젊은 선수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 사령탑 교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허정무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가장 최근까지 대표팀을 이끌며 현직 국내 지도자를 통틀어 국제대회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2007년에도 자진사퇴한 베어벡 감독 뒤를 이어 한국축구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경우가 있다.
물론 이들이 끝까지 대표팀 사령탑 제안을 고사한다고 해도 탓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축구협회가 자초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누군가는 무거운 짐을 져야만 한다. 과연 누가 이 폭탄 돌리기에서 용기 있게 손을 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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