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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박경완 맘 몰라주는 이만수


입력 2012.12.07 10:51 수정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일단 현역 박경완, 험난한 주전 경쟁

이만수 감독도 구단에 의해 강제 은퇴

박경완의 현재 상황은 1997년 이만수 감독과 묘한 평행이론을 이룬다.

‘SK 레전드’ 박경완(40)의 거취를 놓고 구단과 선수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있다.

앞서 SK 측은 노쇠화한 박경완이 더 이상 1군 무대에서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 은퇴식과 코치연수를 제안했다. 물론 박경완 입장은 정반대다.

결국, SK는 2013년도 보류명단에 박경완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박경완은 허울뿐인 현역 유지가 아닌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길 원한다. 급기야 2군 생활이 길어질 경우 SK에 있을 자신이 없다던 박경완은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다.

구단 측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3년 FA로 SK에 입단한 박경완은 10년간 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을 펼쳤다. 투수들의 구질이나 성향 파악은 물론 팀 내 비중이 워낙 높다보니 구단 내 상황까지 모두 꿰뚫고 있다. 그런 박경완의 이적은 팀의 핵심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박경완을 이대로 보낼 경우, SK는 또다시 팬들의 비난에 십자포화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박경완은 SK를 넘어 한국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대선수다. 자칫 지난 2010년 김성근 전 감독 경질 후 일어났던 소요 사태가 다시 한 번 일어날 수도 있다.

현재 박경완의 거취 문제는 선수 기용의 권한을 지닌 이만수 감독에게 돌아간 상황이다. 이 감독은 수차례 언론보도를 통해 “우린 박경완이 필요하다. 다른 팀에 내줄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그러면서 “주전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벌써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박경완이 그보다 한참 어린 조인성(37), 정상호(30)와의 경쟁에서 이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두 시즌이나 제대로 된 몸 상태가 아니었다. 객관적인 기량만 보자면 올 시즌 군에서 제대한 이재원(25)에게도 밀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은퇴를 종용하는 구단과 더 뛸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하는 선수. 올드팬이라면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다. 시계를 15년 전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지난 1997년 11월, 삼성 라이온즈는 1998시즌 보류명단에서 포수 이만수를 제외했다. 이만수 본인은 물론 팬들까지도 큰 충격에 빠진 일대 사건이었다. 그렇게 프로야구 1호 안타와 타점, 홈런을 비롯해 통산 홈런과 타점, 사사구 기록을 보유하던 ‘헐크’는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삼성 구단의 입장은 현재 SK와 별 차이가 없다. 현역으로 활약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고 기량이 노쇠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이만수는 1993년부터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데뷔 후 11년 연속 기록하던 두 자리 수 홈런 기록이 멈춰 섰고, 타율도 0.207에 그쳤다.

이듬해 12홈런으로 부활하는 듯 했지만 포수로서의 가치는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고, 삼성 구단 측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결국 구단은 선수단을 물갈이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이만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만수는 2년간 해외 코치연수 비용 전액부담과 2군 타격코치 자리를 약속받았다. 만약 선수생활을 고집할 경우 연봉 20%를 삭감한다는 조치도 뒤따랐다.

이만수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6545만원이던 연봉이 5236만원으로 크게 깎였다. 이에 대해 이만수는 “연봉 삭감방침은 자존심을 건드려 스스로 옷을 벗게 하려는 야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후 이만수는 3시즌을 더 현역으로 뛰었다. 대타로 출장하는 일이 잦았고, 간혹 대수비로 나설 경우에는 포수 마스크가 아닌 어색한 1루수 미트를 손에 쥐고 그라운드에 섰다. 그래도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경기 스코어가 승패와 상관없이 벌어지면 이만수를 내보내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어김없이 울려 퍼졌다.

1997시즌 후 강제 은퇴를 당한 이만수는 “팬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야구가 앞으로 계속 발전하고 존속할 수 있을지 선수로서 의문이 든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결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는 은퇴식뿐만 아니라 은퇴 기자회견도 갖지 못했고, 당초 구단 측이 약속했던 코치연수비용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졌다.

따라서 박경완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이만수 감독이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4일, 박경완과 이만수 감독은 문학구장에서 면담 시간을 가졌다. 박경완은 다시 한 번 이적을 요청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이 감독의 입장도 분명했다. 결국 박경완이 경기에 나서기 위해선 험난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1991년 데뷔 후 20여 년간 한국 야구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레전드에 걸맞은 대우가 아니다. 게다가 같은 경험을 지닌 이만수 감독의 결정이라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높아져만 가고 있다. 비록 박경완의 현재 기량이 1군 수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다른 이가 아닌 이만수 감독이라면 좀 더 따뜻하게 감싸줄 필요가 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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