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에게 월드컵이란 ‘정녕 분루?’
4년 전 막판 고비 못 넘어 ‘최종엔트리 제외’
브라질월드컵 앞두고도 비슷한 흐름..반전 절실
4년 전 딱 이맘때였다.
2009년 6월7일(한국시각),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한국 축구대표팀은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 알 막툼 스타디움서 열린 UAE와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경기에서 전반 8분 박주영 선제 결승골과 전반 38분 기성용 쐐기골을 앞세워 2-0 완승했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남은 두 차례 홈경기(사우디아라비아전, 이란전) 결과에 관계없이 B조 2위를 확보, 일본과 호주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남아공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이날 UAE를 상대로 골을 터뜨린 것은 박주영과 기성용이었지만, 박주영과 최전방 투톱으로 선발 기용된 선수는 이근호(28·상주 상무). 당시 ‘허정무호 황태자’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이근호의 남아공행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근호는 허정무 당시 대표팀 감독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허정무호는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답답한 플레이를 이어가다 2008년 9월 10일 정대세가 이끄는 북한과의 최종예선 1차전에서도 졸전 끝에 1-1 무승부에 그쳤다.
허정무 감독과 대표팀에 대한 언론과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로 가득했다. 이때 허정무 감독과 대표팀을 구한 인물이 바로 이근호였다.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2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10월 15일 펼쳐진 UAE와의 최종예선 2차전에서 또 다시 2골을 작렬, 허정무 감독과 대표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이후에도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3차전 결승골, 2009년 2월 4일 열린 바레인, 3월 28일 펼쳐진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도 연이어 득점포를 가동했다.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을 빚은 이근호의 절묘한 패스는 이근호의 가치를 그대로 말해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0년 6월 1일. 허정무 감독이 발표한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23명)에서 이근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최종예선 이후 1년여 동안 유럽 진출 실패와 평가전에서의 부진이 발목을 잡은 것이 충격적인 최종엔트리 탈락의 원인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이근호에게 많은 기회를 줬는데 너무 슬럼프가 길어 아쉽다"고 미안함 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이근호는 다시 월드컵의 꿈을 꾸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이 그 무대다. 그러나 이근호는 또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엔 대표팀의 브라질행 운명이 걸린 최종예선 막판에 안타까운 ‘헛발질’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 레바논전에서 ‘감(感)’ 떨어진 플레이로 한국의 답답했던 팀 플레이의 한 원인이 됐던 이근호는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시종 활발한 움직임에도 골 기회를 날려버리는 등 결정적인 순간 정확도 높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후반 이동국과 교체됐다.
이날 전반에 한국의 선제골이 나오던 시점, 그 지점에 이근호가 문전 쇄도를 했지만 정작 골은 이근호의 것이 아닌 우즈베키스탄 선수의 자책골이었다.
종합적으로 놓고 볼 때, 이근호의 플레이는 앞선 레바논전과 마찬가지로 반대편 이청용 플레이와 극명하게 대조되며 좌우 공격 밸런스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이동국 투입 이후 손흥민이 이근호 자리에서 활약하면서 왼쪽 측면 공격에 다소 활기를 띤 것은 이근호에게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같은 우려 속에 맞이한 이란전. 앞서 두 차례 최종예선을 통해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근호의 선발출전 가능성은 낮아 보였고, 실제로 이근호는 스타팅 멤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근호는 후반전 김영권의 결정적 수비실책에 편승한 구차네자드의 선제골로 이란에 0-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골을 만들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그라운드에 투입됐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선 이근호는 그 어느 때보다 악착같고 근성 있는 플레이로 이란 문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근호는 후반 추가시간 막판 김치우의 결정적인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리며 최종예선 일정을 끝내고 말았다.
앞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무인지경의 골문에 시도한 슈팅을 허공을 날려버렸던 상황과 내용면에서 별반 다름이 없는 결정적인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근호는 기회를 크로스바 위로 날려버렸다.
이근호가 최근 대표팀에서 보여준 다소 부진한 플레이는 앞서 브라질월드컵 예선경기나 각종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날카로운 움직임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4년 전 남아공월드컵 엔트리 탈락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현재 이근호의 소속팀이 K리그 클래식이 아닌 K리그 챌린지에 속해있는 상주상무인 탓에 소속팀에서의 경기 감각이 이전만 못한 이유가 대표팀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근호가 최근 레바논과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이란을 상대로 선보인 경기력은 불과 2년 전 울산현대 ‘철퇴축구’의 주역으로 아시아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던 선수임을 떠올릴 때, 분명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완전히 기회가 날아간 것은 아니다. 한국이 브라질행 티켓을 거머쥔 이상 앞으로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1년여 동안 이어질 전지훈련과 세계 강호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이근호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4년 전의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고 월드컵과의 인연을 만들려고 한다면 이근호는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만큼, 그가 이근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경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분발만 가지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운도 따라야 한다. 이근호가 월드컵이라는 가까운 듯 멀었던 꿈의 기회를 이번에는 움켜쥘 수 있을지, 이번에도 월드컵과의 '박한 인연'에 분루를 삼킬지 지켜볼 일이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