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대장정 국조, 끝내 보고서 채택은 '불발'
여 "회의했으면 결과 남겨야" vs 야 "보고서 채택하면 국민 혼란"
여야가 23일 53일간의 국회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국정조사 일정을 마무리한 가운데 끝내 국정원 국조 보고서 채택에는 사실상 실패하는 등 향후 여야 대립은 지속될 전망이다.
양측은 이날 마지막까지 보고서 채택 여부에 대해 첨예하게 맞서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은 이날 초지일관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병렬로 담은 보고서 채택을 주장했다.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민주당은 결과 보고서 채택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 없이 진상 규명에만 맞춰 정치 선전을 하고 있다”며 “사법부 공식 판단을 남겨 놓고 여야가 각자 바라보는 시각을 담아서 채택해야 한다. 회의를 했으면 결과를 남기는 것이 선례”라고 야당에 보고서 채택을 요구했다.
권 의원은 이어 “여당과 야당의 시각을 담으면 국민들이 이 사건의 쟁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미 초안이 만들어져 있고, 여야의 공평한 의견이 실려 있다. 결과 보고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야당은 단독 보고서를 만들어 국민에게 보고하겠다고 한다”며 “여야가 상생하는 최적의 방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서 여야의 균형 있는 의견을 반영하는 보고서 채택에 동의해주길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김태흠 의원도 “국조가 90분의 축구 경기라면 이것이 원만히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게임이 끝났다”며 “그렇다면 결과를 양쪽이 느끼는 대로 채택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국조를 통해 진실규명이 오롯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서 채택은 불가하다고 맞불을 놨다.
야당 간사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보고서를 채택할 경우, 국민들이 혼란스러울 것”이라며 “거짓은 거짓대로 따로 분류하고, 진실은 진실대로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의원은 또 “진실과 거짓말의 거리가 너무나 먼데 함께 채택하자는 것은 진실을 거짓으로 가리겠다는 것”이라며 보고서 채택 불가론에 불씨를 지폈다.
아울러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선서 거부를 본인의 유죄 판결이 날만한 사실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을 통해 재판에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하기 위해 썼다”며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이 이들이 무죄 판결 받도록 국선 변호를 한 것이므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까지 으르렁 댄 여야, 미소로 마무리는 했지만...
한편, 53일간의 국조 일정마다 여야 간 극심한 대립으로 ‘막말논란’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특위위원들은 국조 마지막날까지 서로에 대한 비판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갔다.
특히 박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마다 핀잔을 주거나 갑자기 반론을 제기하는 등의 행동으로 여당 측 의원들의 공분을 샀다.
박 의원은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 중 “윤 의원이 직접 수사하셨냐?”고 비꼬았고, 권 의원의 마무리 발언에도 “무죄허가서 채택”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회의 도중 잠시 자리를 비운 여야 간사들에 대해서도 “간사들이 간사하다”고 비아냥댔다. 이에 여당 측 의원들이 “또 시작이다”, “그만 좀 하세요” 라고 응수하는 등 양측 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신기남 위원장이 이를 중재하며 여야 간사 간 추가 협의를 주문한 뒤 회의가 정회됐다.
특히 신 위원장은 이날 회의 말미에 이번 국조에 대한 자신의 소감과 후배 의원들에 대한 당부의 말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신 위원장은 “이제 보고서 채택만 하면 우리의 일정을 모두 채운 셈”이라며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일정부분 성과를 낸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단, 마지막으로 여야 의원들에게 당부한다”며 “이 사회에는 심각한 여러 가지 갈등과 이해관계가 존재, 교차하기 마련이다”고 차분히 발언을 이어갔다.
신 위원장은 “이번 국조 내내 의원 개인마다 여러 의견이 나오는 과정에서 싸우기도 했다”며 “그러나 이는 개인이 아닌 공익을 위해 한 것으로 본다. 유권자의 권한 위임을 받고, 소속한 정당을 위해 대립한 것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인의 대립이 아닌 만큼) 앞으로 사적인 자리에서는 의원들 간 우애는 돈독히 하길 바란다는 것이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라며 “우리가 또 서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그간의 열기를 식히고, 찬바람이 불면 화해의 자리를 내가 한번 주선해 보겠다. 그동안 수고많았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의 발언에 1시간30분 넘게 공방을 벌였던 여야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뒤 정회가 되자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 악수를 청하며 미소로 인사했다.
다만, 국조 내내 팽팽하게 대립했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과 박영선 민주당 의원 간 악수는 성사되지 않았다. 또한 이날 회의에는 ‘광주경찰’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과 3일째 단식투쟁에 나선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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