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들 '시장형 실거래가제 폐지'에 목숨 걸어
작년 4월 일괄 약가인하 이후 집단행동..."시장질서 무너뜨리고 산업발전 저해"
국내 제약사들이 정부가 도입하려고 하는 시장형실거래가(저가구매 인센티브)제와 관련, 폐지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사활을 걸고 나섰다.
가뜩이나 어려운 제약산업이 더 이상 양보하고 물러설 곳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제약사들이 이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6506품목에 대한 약가인하를 단행한 이후 거의 처음이다.
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서울 방배동 한국제약협회에서는 '제27회 약의 날 기념 시장형 실거래가제 제도 토론회'가 열렸다.
업계의 생존이 걸린 이슈니만큼 토론회가 열리는 강당 내에는 약 200여명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시장형 실거래가제도는 병·의원이나 약국이 의약품을 건강보험에 규정된 가격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경우, 그 차액 중 70%를 인센티브로 되돌려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약을 병원이 900원에 구입한다면, 싸게 구입한 100원의 70%인 70원을 병원에 인센티브로 주고 나머지 30원은 환자에게 돌려준 뒤 약값을 900원으로 낮추는 것이다.
이 제도는 병·의원이나 약국이 상한가격 안에서 구입했다고 신고한 액수 그대로 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던 '실거래가 상환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16개월 동안 시행했다.
이후 지난해 4월 일괄 약가인하가 도입되자 제약 산업의 피해를 고려해 2012년 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2년간 이 제도 시행을 유예했다. 정부가 또 다시 유예하거나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내년 2월 다시 시행해야 한다.
정부입장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병·의원과 약국은 이윤이 보장되고 환자는 실제 구입가격으로 기존보다 더 저렴하게 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건강보험재정 절감효과와 불법 리베이트를 차단하기 위한 명분이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이 제도는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제약산업을 더 이상 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이 제도는 불법 리베이트를 합법화하는 것이며 국민에게 이중부담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제도라는 주장이다.
이진승 한국제약협회 부장은 "자동차나 IT제품의 경우 제품 가격은 제조사가 정하는데 제약산업은 정부가 가격을 조절하고 있고 자동차나 IT같은 것은 정부에서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워주면서 제약산업은 오히려 왜 더 억누르는지 알 수 없다"며 "건강에 대한 주권은 제약산업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는 점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아울러 이 제도는 정부가 대형병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부추기고 불공정거래와 유통 왜곡을 조장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은 "제약산업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약개발을 위한 R&D에 쏟아야하고 글로벌 진출을 위해 활용해야할 재원이 큰 병원의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그 본질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관 한국의약품도매협회 이사 역시 "여러 문제로 시행 유예중인 이 제도를 내년부터 다시 시행하겠다는 것은 칼자루를 쥔 슈퍼갑에게 권총을 한자루 더 얹어주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봉춘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시장형 실거래가제를 보완 시행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성주 의원에 따르면 과거 시장형 실거래가 시행 16개월간 최대 1600억원의 건보재정이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약가 인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절감액보다 의료기관에 준 인센티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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