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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대원군?’ 포항 우승이 던진 메시지


입력 2013.12.04 12:09 수정 2013.12.04 12:1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용병 없이 FA컵-K리그 클래식 석권 ‘역대 최초’

K리그판 ‘화수분’ 유스시스템 있어 가능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이 K리그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 포항 스틸러스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가 FA컵에 이어 K리그 클래식 정규리그마저 휩쓸며 올해 최고의 팀으로 우뚝 섰다.

포항이 K리그 정상에 오른 것은 2007년 이후 6년 만이자 통산 5번째(1986·1988·1992·2007)다. 최다 우승팀 성남(7회)에 이어 역대 2위의 기록. 이미 지난 달 전북 현대를 물리치고 FA컵 2연패를 달성한 포항은 역대 FA컵 최다 우승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30년 역사상 리그 우승컵과 FA컵을 동시에 품은 것은 포항이 처음이다.

포항 우승은 '신토불이 스틸타카'(스틸러스+티키타카)로 불리는 패싱축구와 탄탄한 유스시스템의 합작품이다. 황선홍 감독은 강한 압박과 스피드로 대표되는 K리그 스타일에 바르셀로나식 패싱게임과 점유율 축구의 접목이 가능하다는 것을 올 시즌 성적으로 입증했다.

포항을 제외한 올해 K리그 4강들이 모두 최전방에 특급 스트라이커(울산 김신욱·전북 이동국·서울 데얀)를 앞세운 클래식한 형태의 포메이션을 운용했던 것과 달리, 포항은 미드필드부터 끊임없이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를 지배하는 점유율 축구를 통해 대형 공격수 없이도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황선홍 감독은 높은 점유율과 제로톱을 활용한 탄력적인 전술운용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 포항은 K리그 클래식 전 구단을 통틀어 올 시즌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이 시즌을 꾸려야했음에도 오히려 리그 30년사에 유례없는 업적을 세웠다. 모기업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형편이 안 되자 과감하게 국내 선수들만으로 시즌을 꾸려보자고 결심했다. K리그판 '화수분'이라고 할 만큼 리그에서 자체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포항이었기에 가능한 모험이었다.

포항을 K리그의 바르셀로나라고 하는 것은 플레이스타일만 아니라 체계적인 유스 시스템을 통한 꾸준한 선수 육성에 있다.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유스시스템을 구축해 내부에서 주전급 선수를 육성하는 전통을 지켜온 것이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였고 실제로 포항의 유스시스템도 이를 벤치마킹했다.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1985년부터 포철공고 축구단을 창단하며 K리그에서 가장 일찍 유소년 육성에 눈을 떴다. 올 시즌 K리그가 공통적으로 재정 한파의 시련에 허덕이고 가운데 30년 가까이 구축해온 포항의 유망주 프로젝트가 빛을 발했다. 올 시즌 포항의 상승세를 이끈 이명주·고무열·김승대·신화용 등은 모두 포항 유스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포항의 우승은 희망 못지않게 많은 고민과 숙제도 안겼다. 포항은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정상 재도전에 나선다. K리그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낸 포항이지만 정작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승 4무 1패로 조별리그 관문을 넘지 못해 얇은 선수층과 해결사 부재라는 약점도 노출했다. ACL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날로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국제클럽 무대에서는 전력의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타 구단들에는 포항의 신토불이 우승이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재정 악화로 우수 선수들의 해외 유출과 함께 외국인 선수 영입도 날로 힘겨워지면서 K리그의 전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각 구단마다 선수 수급이 더욱 힘겨워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 없이 우승을 차지한 포항의 사례는 다른 구단들로서는 더욱 모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분명한 사실은 포항은 결코 처음부터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며, 국내선수들만으로 시즌을 치른 것도 그나마 유스시스템이 발달한 포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황선홍 감독은 올 시즌 자신과 포항축구를 빗대 '황선대원군' '쇄국축구'라는 패러디가 나올 때마다 "사정이 안돼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 못했을 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포항의 지속적인 유소년 투자는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만일 포항의 성공을 흉내 내고 싶은 구단이 있으면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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