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울린 태극전사 극장 '환상의 골'
잉글랜드, 1966 월드컵 무대서 북한 축구 괴력에 놀라
2002 한일월드컵 감동 이어 이젠 기성용 강렬한 골에 눈물
영국은 속된 말로 축구에 미친 나라다.
축구를 잘하면 선입견 버리고 무한 호감을 드러낸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이 대표적 예다. 당시는 살얼음판 같았던 냉전시대. ‘수수께끼’ 북한이 영국에 입성하자 현지인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축구에 사무친 영국인들은 북한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우승후보 이탈리아마저 1-0으로 격침하자 영국 전역은 들끓었다. 미들스보로 지역 시장은 “오늘 같은 축구는 처음 봤다. 평균 신장 165cm 작은 체구임에도 과감하게 부딪치고 쉼 없이 달리며 볼도 기가 막히게 다룬다”며 “북한이 축구의 원형을 보여줬다. 그들의 원초적인 축구를 보면서 현실의 상념을 잊는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감격에 벅찬 영국 해군도 삼엄한 경비를 뚫고 축구장 안으로 난입, 북한 선수와 손을 맞잡았다. 영국 해군은 “축구야말로 인종, 이념 갈등을 초월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위대한 스포츠”라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2002 한일월드컵서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이 이탈리아와의 16강전서 ‘어게인 1966’을 재현한 것. 강렬한 북한축구를 기억하는 영국도 난리가 났다. 당시 취재진이 영국 런던 펍을 방문했는데 서울인지 런던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일제히 한국을 응원한 영국인들은 “안정환이 이탈리아 피자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의 골든골은 전율의 블록버스터였다. 그가 울 때 나의 가슴도 타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또 모레노 주심의 판정에 대해선 “단호하고 정확했다. 이탈리아는 훈련시간에 엄살 몸짓 연습을 한다”고 지적하며 목청껏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흐른 2013년, 태극전사가 여전히 영국 축구팬을 울리고 있다. ‘최신호 주인공’은 기성용이다.
기성용은 지난 18일 선더랜드 홈구장서 열린 첼시와의 ‘2013-14 캐피털원컵’ 8강에서 결승골을 넣어 거함 첼시를 2-1로 잠재웠다. 경기 전 ‘첼시의 제갈공명’ 무링요 감독은 선수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선더랜드의 열쇠 ‘키’성용을 막아야 이길 수 있다”며 “그가 자유롭게 볼을 만지지 못하도록 겹겹이 둘러쌀 것”을 주문했다. 기성용 결승골은 이런 삼엄한 경비를 뚫고 넣었기에 더욱 값지다.
올 시즌 '리그 꼴찌' 선더랜드도 감격에 젖었다. 선더랜드 공식 트위터엔 ‘한국어’로 “믿을 수 없는 순간” 문구가 선명히 적혀있다. 영국 현지 서포터도 SNS을 통해 “기성용이 통렬한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칠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며 “한국에서 온 청년이 나를 울렸다. 선더랜드 가족 모두가 절망감에 익숙해졌을 때 ‘용병’ 기성용이 나타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 셈이다. 그의 용기와 리더십을 무한 신뢰한다”고 적었다.
기성용 골로 다시 한 번 유럽파 태극전사의 장점이 명백해졌다. 바로 과감하게 영국 ‘공룡 클럽’의 명치를 때렸다는 점이다. 박지성이 서막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벵거의 아스널을 통산 5번(5골) 두들겼다. 또 첼시, 리버풀을 상대로도 멋진 골을 터뜨렸다. 후배들 활약도 못지않다. 지동원은 맨체스터 시티전 결승골, 김보경은 맨유전 동점골을 넣었다.
이런 경우는 세계적인 축구강국의 사례를 봐도 흔치 않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조차 첼시, 맨유, 맨시티를 상대로 골맛을 본 선수는 극소수다.
덕분일까. 영국에서 태극전사 이미지는 호기심→호감→짝사랑’ 단계로 바뀌었다. 세계적 명장 퍼거슨(은퇴)이 대표적 예다.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자 자필편지를 통해 “더 신경써주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 너의 (시한부) 무릎상태가 걱정돼 꾸준한 출장기회를 주지 못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진정한 프로페셔널 본보기였다. 맨유의 모든 직원과 동료가 널 존경한다”고 적었다. 이밖에도 볼턴 구단주는 이청용을 양아들(?) 삼았고, 김보경 또한 카디프시티 연고 웨일즈의 기린아 용병이다.
태극전사 맹활약에 같은 아시아 출신 일본 선수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특히, 맨유 가가와 신지는 최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성 때문에 내가 맨유에 올 수 있었다. 박지성은 한국의 자랑을 넘어 ‘아시아 자존심’”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영국을 울린 북한 천리마 군단과 한국 태극전사들, 이들이야말로 '원초적 축구 본능'의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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