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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를 아는가' 기대·우려 공존, 박종환 리턴


입력 2013.12.24 09:56 수정 2013.12.25 08:55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성남시민축구단 초대 감독 선임 ‘70대 감독 시대’

‘스파르타식 지도의 원조’ 변화된 축구흐름 따라갈까

프로축구 성남시민축구단 초대 사령탑으로 임명된 박종환 감독 ⓒ 연합뉴스

'스파르타의 원조' 박종환 감독(75)이 23일 시민구단으로 탈바꿈한 성남 축구단의 차기 감독으로 선임됐다.

성남은 2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성남시청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 취임식을 열고 박종환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박종환 감독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축구의 원로다. 춘천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와 대한석탄공사에서 선수생활을 보냈고 은퇴 후 1965년 단국공고 체육교사 겸 창단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에 입문했다. 사실상 감독 경력만 반세기에 이르는 축구계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만하다.

선수 시절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성남고-유신고-전남기공-서울시청 등 맡는 팀마다 정상으로 이끌면서 '우승청부사'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박종환 감독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 청소년대표팀에서 이룬 업적 때문이다. 1980년과 1982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뒤 출전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박종환 감독은 일약 한국을 4강으로 이끄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축구가 국제무대에서는 무명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규모의 대회에서 거둔 최초의 성과였고, 이는 한일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축구가 거둔 최대의 자랑거리로 남았다. 이제는 한국대표팀의 애칭으로 자리 잡은 '붉은 악마'가 처음 외신을 통해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종환 감독은 이후 프로무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1989년 일화 천마(당시 천안)의 창단 감독을 맡았고, 이후 1993부터 1995년까지 일화 천마를 정규리그 3연패로 이끌었다. K리그 역대 최다우승팀으로 자리매김한 성남의 첫 황금기를 구축한 창업군주였던 셈이다.

성남을 떠난 지난 2001년에는 한국여자축구연맹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K리그 시민구단인 대구의 사령탑을 기도 했다. 박종환 감독이 성남 시민구단의 초대감독으로 부임함에 따라 2006년 11월 대구 감독에서 물러난 지 7년만의 현장에 복귀하게 됐다.

프로필상 1938년 2월생으로 만 75세인 박종환 감독은 복귀와 함께 프로축구 역대 최고령 감독 자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박종환 감독은 올해 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 최근 울산 사령탑에서 물러난 김호곤 감독(51년생)보다도 무려 13살이나 많다. 70대 중에서 현역 프로감독으로 활약한 사례는 박종환 감독이 처음이다.

유럽에서도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종종 고령의 나이에도 감독직을 수행하는 사례를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알렉스 퍼거슨(72) 전 감독은 퍼거슨은 1986년 11월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후 26년 동안 지휘봉을 잡으며 소속팀에서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안긴 바 있다.

이탈리아 출신 명장 지오바니 트라파토니(74) 전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이나 스페인의 유로 2008 우승을 이끌었던 루이스 아라고네스(75) 전 감독도 모두 칠순을 넘겨 현역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박종환 감독과 비슷한 세대인 이들은 더 이상 현역이 아니다. 퍼거슨 감독이 지난 시즌 맨유를 우승으로 이끌고 명예롭게 은퇴했고, 트라파토니가 지난 9월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으며, 아라고네스 감독 역시 2009년 터키 페네르바체를 마지막으로 다른 팀을 맡지 않고 있다.

박종환 감독은 고령의 나이는 물론이고 7년이나 되는 공백기를 거쳐 현장에 다시 복귀했는데 이 역시 축구계에서는 드문 일이다. 까마득한 40대 후배 감독들이 최근 대세를 이루고 있는 프로축구계에서 아버지뻘에 가까운 왕년의 백전노장이 귀환한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박종환 감독의 현장 복귀에 여론의 반응은 엇갈린다. 올 시즌 프로무대에서 젊은 감독들의 득세에 맞서 60대 파워를 보여준 김호곤 감독의 사례처럼, 연륜과 관록으로 무장한 노장 감독들의 귀환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다.

최근 페트코비치 감독의 후임으로 경남의 신임사령탑에 선임되며 이차만 감독(63)도 90년대 부산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의 황금시대를 이끈 베테랑 출신으로, 연령대로는 박종환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서열을 예약했다.

하지만 박종환 감독의 선임 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팬들도 적지 않다. 단지 나이가 주는 선입견보다는 그동안 알려진 박종환 감독의 지도스타일이나 오랜 현장 공백이 주는 위화감이 달라진 시대와 축구환경을 따라올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박종환 감독은 전성기였던 1980~90년대 시절에도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강성 감독으로 악명이 높았다. 또 다른 강성형 감독으로 유명한 안익수 전 성남 감독도 일화 시절 박종환 감독의 직계 제자였고, 실제로 박종환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파르타' 정신으로 요약되는 박종환 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스타일과 훈련방식은 지금도 축구계에서는 전설적인 일화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 유명한 것만 살펴봐도 멕시코 청소년 대회 당시 고산지대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방독면을 씌우고 훈련을 시키는가하면, 일화 감독 시절 경남 전지훈련 당시 선수단 전원으로 해금 진주성 일대를 마지막 1명이 남을 때까지 '죽음의 선착순'으로 무한정 돌게 했다는 일화 정도는 가벼운 축에 속한다.

체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박종환 감독의 훈련스타일 때문에 훈련시간의 절반 이상이 볼을 가지지 않고 뜀박질만 반복하는 훈련으로 악명이 높기도 했다. 박종환 감독은 외국인 선수에게도 열외가 없기로 유명했는데, 박종환 감독 시절 일화에서 활약하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출신 신의손(당시 사리체프) 코치는 "선수단 전원이 무조건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오전 내내 공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무조건 달리기만 했다. 외국인 선수라도 전혀 예외가 없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훈련량이 많다고 호소하는 다른 팀 선수들도 "일화에 가서 박종환 감독한테 유격훈련 한번 받아볼래?"하고 물으면 즉시 불평을 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혹독한 훈련 못지않게 박종환 감독은 거친 언행으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실전에서 경기력이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에게 불호령은 물론이고 공공연하게 손찌검까지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부작용도 컸다. 박종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1983년 LA 올림픽 대표팀은 당시 아시아 예선을 앞두고 박종환 감독의 지나친 스파르타식 훈련에 불만을 품고 일부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무단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종환 감독이 마지막 대표팀으로 지휘봉을 잡은 1996년 아시안컵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당시 한국은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으로 대패하는 참사를 당했는데, 당시는 아시안컵을 대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박종환 감독의 혹독한 리더십에 불만을 품은 일부 대표선수들이 태업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큰 파장을 남겼다. 박종환 감독은 결국 아시안컵을 끝으로 불명예스럽게 하차했고, 이후로는 더 이상 대표팀을 맡지 못했다.

또한 박종환 감독은 노골적인 '반(反) 외국인' 정서를 지닌 축구인의 대표주자로도 유명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당시 히딩크 감독에 대해 노골적으로 독설을 날린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박종환 감독은 평가전에서 연이어 5-0 참패를 당하며 부진을 거듭하던 히딩크 감독에게 "외국인 감독이라서 한국축구를 하나도 모른다", "빨리 베스트 11를 정하고 조직력을 키워야한다"는 등 국내 축구인들이 주장하는 보편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서 예상을 넘어선 4강 신화를 일궈내며 그를 비판하던 박종환 감독과 국내 축구인들을 머쓱하게 했다. 지금도 박종환 감독이 30대 이하의 젊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구시대적이고 낡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결정적인 계기다. 박종환 감독은 이후에도 "히딩크는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경우다. 한국 감독이 당시 히딩크만큼의 지원을 해준다면 외국인 감독보다 못할 게 없다"고 주장해왔다.

박종환 감독이 활약하던 시절에 비해 축구의 전술과 트렌드도 많이 변화했다. 1980~90년대만 해도 K리그에서는 대인방어 위주의 수비전술이 대세를 이뤘다. 포백을 구사하는 팀도 드물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팀들이 지역방어를 통한 공간 압박을 구사하며 포백도 보편화됐다. 젊은 선수들의 의식구조도 많이 변화해 예전처럼 권위적인 감독의 일방적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는 시대도 아니다. 박종환 감독의 리더십도 달라진 시대 정서에 맞춰 변화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성남 축구팬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박종환 감독의 선임이 순수한 목적보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게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안익수 전 감독은 구단살림이 어려운 상황에서 팀에 애정을 가지고 성남을 잘 이끌어왔고 K리그에서 지도력도 인정받은 명장이다.

박종환 감독의 직계 제자출신답게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이나 선수단 장악력도 나무랄 데 없다. 굳이 경질당할 만한 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멀쩡히 일 잘하고 있던 안익수 감독을 물러나게 하고 현장을 떠난 지도 오래된 박종환 감독을 선임해야할 만한 명분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시민구단으로 변신한 성남의 모기업은 이제 성남시고 구단주는 이재명 시장이다. 기존의 성남 이미지를 벗어나 시민구단으로 새롭게 재창단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차별화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과 전문적인 검증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단행되는 감독선임이 팬들의 여론과는 동떨어져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종환 감독이 일부의 우려와 편견을 딛고 성남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 프로축구에서 노장 감독의 연륜이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야구의 김성근 감독(고양 원더스)도 2007년 SK의 지휘봉을 잡을 당시에는 고령의 나이와 강성 이미지, 우승경력 부재 등으로 의문부호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후 3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야신'으로 거듭났다.

혹독한 훈련량과 지나친 관리형 리더십으로 구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그의 지도스타일은 이후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바꾸는 대세가 됐다. 그 이면에는 과거의 경력이나 성공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를 거듭한 김성근 감독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종환 감독 역시 충분히 준비돼 있다면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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