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조공에 가까운 유럽 클럽 스폰서 역할
평행한 동업자 관계인 한국 기업과 달라 '씁쓸'
한국기업은 유럽 명문클럽과 ‘평행한 동업자’ 관계다.
첼시 메인 스폰서 모기업이 대표적 예다. 내수시장보다 ‘세계시장’을 겨냥하다 보니 첼시에 반드시 한국선수 영입과 같은 단서조항을 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업은 득실을 따져 유럽 명문클럽의 구애를 뿌리치기도 한다. 스폰서를 구걸하다 퇴짜 맞은 아스날 사례가 본보기다. 아스날은 박주영 영입 직후 한국기업에 노골적으로 지원을 부탁했지만, 업계는 아스날을 문전박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으로 뭉친 한국 정서상, 박주영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한 아스날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고 씁쓸해했다.
반면, 일본 기업은 한국과 정반대 정서를 지녔다. 가가와 신지(24) 보호자를 자청한 6개의 일본 스폰서가 대표적 예다. 가가와가 잉글랜드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진출하자 일본 굴지의 기업이 줄지어 맨유를 지원했다. 고가의 의료설비를 무상 제공한 모기업을 비롯해 디젤 엔진 생산업체도 맨유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줬다.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에 입단한 혼다 케이스케(27)의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언론은 공개적으로 혼다 스폰서 파워에 쾌감 어린 신음을 내뱉었다.
AC밀란 관계자는 “혼다의 연봉이 275만 유로(약 39억 원)에 달하지만, 우리는 부담 없다. 일본 대기업들과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연간 ‘200억 원’이 넘는 고정수익을 예상한다”며 혼다 구입은 수배 남는 장사임을 강조했다. 명가 재건을 노리는 AC밀란(올 시즌 13위)은 빵빵한 일본 돈 줄을 통해 진짜 슈퍼스타 영입작업에 착수했다.
아시아는 ‘돼지 저금통’이 아니다. 유럽 명문클럽이 “배 갈라달라"고 부탁하면 다 내주는 굽실굽실 아시아 기업의 태도는 고스란히 선수에게 피해가 간다.
13억 중국 인민 자존심을 긁은 동팡저우 사례가 단적인 예다. 중국 축구계는 아직도 앙금이 가시지 않은 듯 “맨유 구단주가 키워주겠다고 데려가 놓고 희망고문 했다. 동팡저우는 맨유의 중국진출을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시대는 변했다. 2014년, 유럽 클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도 2002 한국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박지성, 이영표가 유럽에 진출, 축구팬은 안방서 유럽파 활약상을 지켜봤다. 유럽파 태극전사는 직접 붙어보니 별거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이청용도 볼턴 이적 후 “영국리그는 K리그와 큰 격차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K리그 클럽이 유럽 전지훈련서 체코, 독일, 크로아티아 클럽을 격파하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유럽축구에 눈떴다. 1977년 일본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오쿠데라를 비롯해 1998~2006 페루자, AS로마, 파르마, 볼로냐, 피오렌티나 등에서 뛴 나카타 히데토시가 본보기다. 경제력을 갖춘 일본은 수 십 년 전부터 유럽축구를 생중계해왔다. 그 결과, 유럽 명문클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덜했다.
그럼에도 2014년 일본은 여전히 유럽의 상술에 넘어간다. 알면서도 당한다. 자존심마저 던진 채 일본선수가 소속된 유럽클럽에 ‘조공’하기 바쁘다. 이 때문일까. 가가와는 과중한 부담에 상처까지 입었다. 도르트문트에서 보여준 놀라운 재능으로 맨유에 입성했지만, 자국 스폰서 때문에 불특정다수가 색안경 끼고 바라본다. ‘금융형 미드필더’라는 표현이 대표적 예다.
동료 사이에서도 충분히 뒷말이 나올 수 있다. 올 시즌 ‘0골 0도움’ 2년차 징크스에 허덕임에도 가가와는 꾸준히 출전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가가와가 자국 스폰서를 앞세워 (맨유의 같은 포지션 동료와) 공정하게 경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쓴 소리를 뱉기도 한다.
아시아는 돼지 저금통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여전히 유럽축구 시장에서 스스로 배를 가른다. 나가토모, 가가와에 이어 혼다의 명문클럽 이적이 영 찜찜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