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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안현수-추성훈, 조국이 내친 비운의 천재


입력 2014.01.20 15:10 수정 2014.01.21 14:53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편파판정-파벌 텃세 등에 등떠밀려 귀화 선택

한국 선수단의 적? 국내 어두운 현실 개선해야

안현수(왼쪽)와 추성훈은 한국 스포츠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 연합뉴스 /데일리안DB

추성훈(37·아키야마 요시히로)이 조국을 메친 게 아니라 조국이 추성훈을 내던졌고, 안현수(29·빅토르 안)가 조국을 추월한 게 아니라 조국이 안현수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재일교포 4세’ 추성훈은 지난 1999년 부산시청에 입단해 2000 시드니올림픽 출전을 꿈꿨다. 그러나 편파판정으로 얼룩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 태극마크의 미련을 버려야 했다.

한일 경계인 추성훈은 자포자기 상태에 놓였다. 1년여 방황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유도였다. 태극마크는 포기했지만, 유도만은 놓칠 수 없었기에 고심 끝에 일본 귀화를 택했다.

독기를 품은 추성훈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81kg급 결승에서 혈전 끝에 안동진을 꺾었다. 당시 국내 일간지 1면은 “조국을 메쳤다”는 문구가 등장했다. 추성훈 입장에서는 자신을 배신자 취급하는 국내 언론이 야속하기만 했다. 추성훈은 태극기와 일장기가 함께 올라간 시상대에서 “한일 국기 사이 가운데만 응시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도 추성훈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 5연패(2003~07), 월드컵 메달 51개(개인 최다), 2006 토리노 올림픽 3관왕 등 안현수의 전성기는 화려했다. 해외에서 애국가를 수차례 울려 퍼뜨린 ‘애국자’였다. 그런 그가 왜 한국을 떠나야 했을까.

안현수는 20일 독일서 열린 유럽 쇼트트랙 선수권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전, 4관왕에 올랐다. 500m, 1000m, 3000m, 5000m 계주에서 연거푸 정상을 차지했다. 폭발적인 순발력은 여전했고 원심력을 이겨내는 섬세한 인코너 기술도 녹슬지 않았다.

이처럼 여전히 건재한 ‘세기의 재능’ 안현수가 러시아를 택한 이유는 유도를 사랑한 추성훈과 같다. 순수하게 쇼트트랙을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러시아 귀화 이유에 대해 “소속팀 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훈련할 곳을 잃어버렸다”며 마침 러시아 시청이 입단을 제의해 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현수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이면엔 ‘파벌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 한체대와 비한체대로 나뉜 파벌 싸움 여파 속에 안현수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그리고 2008년 초 엄습한 절체절명의 부상, 안현수는 대표팀 훈련 도중 무릎 뼈가 으스러졌다. 이 때문에 ‘절묘한 시기’에 열린 대표 선발전서 탈락, 2010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한국 쇼트트랙 승부담합 파문이 터져 나왔다. 파벌 희생양 안현수는 소속팀 없이 개인훈련만 하다가 러시아 빙상연맹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러시아는 조국(한국)이 몰라준 불세출의 천재 안현수의 딱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11년, 러시아 빙상연맹과 모스크바 시청의 초청으로 안현수는 러시아서 본격적인 실전훈련을 시작했다. 안현수는 잡다한 걱정 없이 쇼트트랙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마냥 행복했다. 자연스럽게 러시아 시청 소속에서 러시아 귀화 선수로 연결됐다.

다행스러운 건 추성훈과 안현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고질병인 파벌, 인맥 희생양이라는 내막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성훈은 유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지만, 예능 태극마크는 달았다. 한 예능 방송에서 추성훈과 야노시호의 외동딸 추사랑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배경도 ‘아빠가 추성훈’이기 때문. 안현수 또한 이름과 국적을 바꿔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추성훈과 안현수 사례처럼 한국은 ‘천재’를 키울 줄 모른다. 개천에서 용이 태어나길 바랄뿐, 막상 용이 태어나면 관리할 역량이 부족하다. 상당수 재능을 타고난 유망주들이 타국에서 자비를 털어 살길을 모색한다. 피겨 불모지에서 태어난 김연아가 대표적인 예다. 밴쿠버 올림픽 전까진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해왔다. 국내 빙상장은 난방시설은커녕 천장누수로 피겨 꿈나무조차 제대로 연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파벌 희생양 추성훈과 안현수의 귀화가 매도당해선 안 되는 이유다. 오히려 이들의 가슴 아픈 사례를 거울삼아 한국 스포츠의 어두운 현실을 개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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