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안정 집착하다 경제성장 소극적"
"한은이 미시 신용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정립해야"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리면서 경제성장 기반 구축이나 금융시장 안정 등 국민경제의 장기적인 과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08년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과거부터 이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책무인 '물가안정' 임무만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안정, 경제성장 및 고용증대, 금융제도 발전 등 경제적 현안에 대해서는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함정호 인천대학교 무역학부 교수는 13일 한국금융학회·한국은행·한국금융연구원이 공동주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중앙은행업 : 경험과 전망'이라는 제하의 정책심포지엄에서 "한은은 매달 정책금리 결정을 통해 역할의 여지가 제약된 물가안정만 지나치게 강조해왔다"면서 "장기적인 경제성장 기반 구축이나 금융시장안정 등 국민경제의 장기 과제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함정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 물가 상승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을 중요한 책무로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면서 "하지만 한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물가안정·금리중시 통화정책만으로는 금융·거시경제 안정 목표를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함 교수는 한은이 단기적 물가안정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거론했다. 일반물가와 금리가 낮은 안정적인 상황에서 과다한 신용확대 가능성 때문에 또다시 금융위기와 부채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함 교수는 "물가안정이 금융안정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현재는 물가와 금리가 낮게 안정돼 있다. 이 상황에서 과다한 신용확대로 자산가격 거품이 발생·붕괴하면 금융위기와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함 교수는 한은이 '물가안정'이라는 한정된 정책목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국은행법에 물가안정이라는 기본적 책무 외에 미시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조항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은은 물가안정 외에는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금융안정이나 경제성장 등은 부차적인 목표로 간주됐다"면서 "한은은 금융안정이나 경제성장 등에 관련해선 책임성과 구속력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안정과 경기부양을 위한 비전통적인 양적완화 수단이나 금융중개지원대출과 같은 미시적 신용정책 수단을 수행하려는 기능을 제도적으로 정립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앙은행 역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적극적인 협조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 등 경제적 현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금융감독당국과 MOU 체결 등을 통해 좀더 현안이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함 교수는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전통적 의미의 독립성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금융감독당국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물가 안정기반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정책과 적극 공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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