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카드 5000달러 긁으면 '범죄자 취급'
분기별 해외 카드 결제금액 5000달러 넘으면 관세청 통보
'블랙리스트' 관리한다는 것…직구족도 관리 대상에 포함
외국 면세점이나 백화점, 해외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신용카드로 3개월 동안 5000달러(약 530만원)가 넘는 물건을 구매하면 관세청의 추적을 받는다. 해외에서 카드를 많이 쓰는 것만으로도 과세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회의적인 반응이다. 정부가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개인의 민감한 금융정보까지 수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과거의 카드 결제정보는 세수 확보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11일 카드업계와 관세청에 따르면 오는 4월부터 신용카드 회사는 해외 결제금액이 5000달러가 넘은 고객의 결제정보를 관세청에 넘긴다. 이는 지난 1월 관세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개정된 관세법에 따라 분기별 해외 결제금액(외국 통화 인출금액 포함)이 5000달러를 넘긴 카드이용자의 결제정보를 관세청에 보낸다"며 "카드사가 1분기 해외 결제정보를 보내오면 협회는 취합 후 관세청에 넘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종전까지 관세청은 카드사로부터 고객의 결제정보를 받을 수 없었다. 관세청은 법 개정을 통해 카드사와 여신금융협회 등으로부터 과세자료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관세법이 개정된 이유는 뚜렷하다. 세수 확보를 위해서다. 해외 카드 결제금액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분류해 관세를 물리는 데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해마다 여행객의 신용카드 해외 사용이나 해외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물품구매가 증가하고 있다"며 "규모는 커지는 데 비해 관세청은 제한된 인력과 물품구매를 증빙할 카드 결제정보를 받을 수 없어 과세 납부 없이 통관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국내 거주자가 해외에서 사용한 카드 금액은 105억4600만달러다. 이는 사상 최고치다.
결과적으로 관세청은 해외 카드 결제금액을 카드사로부터 받아 결제금액이 많은 사람을 줄 세우겠다는 것이다. 해외 신용카드 결제정보에는 여행자의 물품구매도 포함되지만, 해외 인터넷 쇼핑몰 이용금액도 포함된다. 따라서 해외 쇼핑몰을 이용하는 이른바 '직구(직접구매)' 결제정보도 관세청 감시 대상에 오른다.
관세청 관계자는 "최근 특송과 국제우편 등을 통한 인터넷 직접구매, 구매대행과 같은 개인무역에 의한 전자상거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며 "직구도 구매액이 분기별 5000달러가 넘으면 관리 대상에 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 카드 결제금액 정보를 관세청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쓸지는 물음표다. 또 관세청이 민감한 금융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관세청은 카드사로부터 고객의 해외 결제정보를 '분기별'로 받는다. 결제가 이뤄진 시점에서 최장 3개월 뒤에 결제정보를 받게 되는 셈이다. 관세법 개정안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실시간 결제정보가 아닌 이상 과거 결제금액으로 통관에 활용하는 건 제한적"이라며 "결국 과거 해외 결제금액을 토대로 미래 해외 소비를 추측한다는 건데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감한 카드 결제정보를 과세당국에 제출하다 보면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높다"며 "해외 카드결제가 많은 소비자로선 돈을 많이 쓴다고 탈세 예비자 취급하는 기분도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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