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빛나는 로맨스' 역시나 막장?
'오로라공주' 후속작, 가족극 표방
뷸륜 등 또 막장 코드 투입하며 논란
"남편에게 버림 받은 찰나, 첫사랑은 재벌남이 돼 돌아왔다. 나를 웃게 해주고 나만 바라보는 완벽한 이 남자가 아빠를 죽인 원수의 아들이라니..."
한국 드라마, 특히 일일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개다. 온갖 역경을 딛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남녀 주인공, 이들 앞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난다.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 또한 식상하다. 여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밝고 씩씩한 캔디 캐릭터고 남주인공들은 백마탄 왕자처럼 등장해 모든 일을 단숨에 처리하는 '해결사 능력'을 과시한다. 이들을 괴롭히는 못된 악역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얽히고 설킨 출생의 비밀과 인연' 역시 일일극의 단골 소재다.
평균 시청률 9~10%를 유지하며 순항 중인 MBC '빛나는 로맨스'에는 일일극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빛나는 로맨스'는 막장의 끝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오로라공주'의 후속작으로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지난해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과 연출진은 '오로라공주'를 의식한 듯이 "일부 막장 코드가 있지만 막장 드라마는 아니다"라며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맛있는 저녁식사 같은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갑작스런 아빠(이계인)의 죽음에 주인공 오빛나(이진)는 슬픔에 빠지지만 그녀만을 바라보는 전 남편 변태식(윤희석)을 만나 딸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오빛나의 엄마 정순옥(이미숙)과 동생 오윤나(곽지민)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이어간다. 중간중간에 막장의 조짐이 보였지만 '오로라공주'의 여파가 너무 컸던 터라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설마' 했던 우려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시작은 일일극 단골 소재인 '남편의 불륜'이었다. 극 중 의사인 변태식은 내연녀 엠마(지소영)와 뻔뻔하게 불륜을 저지른다. 변태식은 엄마 허말숙(윤미라)과 짜고 채무 변제를 이유로 아내 오빛나와 위장 이혼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강제 이혼한 오빛나는 남편, 시댁 걱정에 잠 못 드는 가여운 여인이다. 얼마 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극 중 가장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다.
이후 펼쳐진 전개가 더 황당하다. 전 시어머니 허말숙은 오빛나를 손녀 유괴범으로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오빛나의 역경과 고난을 부각시키기 위한 극적 장치인 셈이다.
힘들어하던 그녀 앞에는 첫사랑이자 제이호텔 후계자인 강하준(박윤재)이 때마침 나타난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려온 것처럼 말이다. 강하준은 성격, 능력, 외모 등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재벌남이다. 제작진은 평범한 여자와 재벌남의 사랑이라는 뻔한 소재로 일종의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등장했다. 장재익(홍요섭) 교수의 딸인 장채리는 집사로 일하고 있는 김애숙(이휘향)이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얻은 딸이고 장재익의 친딸이 오빛나인 것. 결국 오빛나와 장채리(조안)는 바뀐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때부터 펼쳐지는 장채리, 김애숙 모녀의 악행은 경악스럽다. 김애숙은 "장채익과 동거 중"이라는 거짓말로 장채익과 정순옥 사이를 이간질한다. 딸 장채리의 악행은 도가 넘는다. 오빛나를 일부러 냉동창고에 가둬 두는 등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 연일 이어진다. 그나마 질투에 사로잡힌 악역을 적절하게 소화하고 있는 조안의 연기력은 박수를 쳐 줄만하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변태식 역을 맡은 윤희석은 막장이라는 비판에 대해 "드라마는 오해와 갈등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결국에는 풀어지면서 시청자의 답답함도 풀어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희석의 말처럼 출생의 비밀과 여러 자극적인 요소는 드라마의 극적 전개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갈등 관계가 있어야 극적 긴장감이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라공주'를 통해 피로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원했던 산뜻함은 부족하다.
출생의 비밀까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아빠의 죽음'을 둘러싼 두 남녀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자신의 아빠를 뺑소니 사고로 죽인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게 된 여자, 그녀만을 바라보는 완벽한 남자. 매번 반복되는 일일극 특유의 뻔한 설정을 제작진은 어떻게 풀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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