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헨리 효과?’ 리버풀의 예고된 성공
헨리 구단주, 리버풀 인수 4년 만에 우승 눈앞
보스턴 레드삭스도 효율성 극대화로 성공 가도
사회학 용어 가운데 ‘존 헨리 효과’라고 있다. 뜻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스포츠계에서도 또 다른 뜻의 ‘존 헨리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사업가인 존 헨리(64)는 잘 알려져 있듯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구단주다. 엄밀히 말하자면 펜웨이 스포츠 그룹의 공동 대표이기도 한데 레드삭스와 리버풀이 여기에 속해있다. 또한 펜웨이 스포츠 그룹은 세계 3대 자동차경주 대회인 미국 나스카 소속의 러쉬 펜웨이 레이싱팀과 펜웨이 스포츠 매니지먼트, 뉴잉글랜드 스포츠 네트워크(NESN)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거대 스포츠 기업이다.
헨리 구단주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나 2004년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보스턴은 헨리 구단주를 맞아들인 2년째, 84년간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번에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서 또 다른 저주를 깨려하고 있다. 바로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이다.
리버풀은 1992년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까지 모두 18차례 1부 리그 우승을 차지, 영국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그들의 우승 시계는 거기서 멈춰져있다. 그러는 사이 가장 지고 싶지 않은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앞질러 가장 먼저 20회 우승 고지를 밟았다.
2000년대에는 ‘빅4’로 불리며 매 시즌 우승에 근접했지만 번번이 고배만 들었고, 급기야 조지 질렛, 톰 힉스 공동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2007년 이후 팀은 암흑기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헨리 구단주다. 헨리 구단주는 불협화음에 이어 구단 자금을 불법으로 사용하던 공동 구단주들에게 약 16억 달러(약 1조 6000억원)를 지불하고 구단을 인수, 이때부터 리버풀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사실 리버풀과 보스턴 레드삭스는 전혀 다른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닮은 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 두 구단이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변혁과 효율성의 극대화다.
먼저 헨리 구단주는 레드삭스를 인수하자마자 ‘머니볼’의 대명사 빌리 빈 단장을 영입하기 위해 나섰다. 끈질긴 구애에도 데려오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대신 임명한 단장은 28세의 신예 테오 엡스타인이었다. 빈과 엡스타인은 야구를 통계 및 수학적으로 분석한 세이버 매트릭스를 기반으로 팀을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헨리 구단주의 파격적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아예 세이버 매트릭스의 대부인 빌 제임스에게 팀 자문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당시 엡스타인 단장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트레이드해 보스턴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고, 팬들의 분노는 우승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젊은 단장의 변혁 시도는 모두 헨리 구단주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버풀에서도 마찬가지다. 헨리 구단주는 팀을 인수하자마자 토트넘에서 선수 영입을 담당하던 대미언 코몰리를 축구전략 담당이사로 임명했다. 코몰리는 ‘축구계 머니볼’을 추구하는 인물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선수 영입 전략에 주력하는 인물이다.(공교롭게도 코몰리는 빌리 빈과 절친이기도 하다.)
물론 헨리 구단주는 무지한 축구계에 처음 발을 들이다 보니 초기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특히 헨리 구단주의 손과 발이 되어주어야 할 코몰리 이사가 능력 발휘를 못했는데, 대표적인 실패작이 앤디 캐롤을 3500만 파운드(약 610억원)에 주고 영입한 일이다. 결국 코몰리 단장은 해임된다.
헨리 구단주는 단장과 감독의 역할이 분리된 야구와 달리, 축구에서는 감독의 지배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리고 직접 그가 영입한 사령탑은 브랜든 로저스 현 감독이다.
로저스의 선임이 파격적인 이유는 그가 바로 잉글랜드 무대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티키타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헨리 구단주는 스티븐 제라드로 대변되는 팀의 전통을 존중해주되 파격적인 감독 선임으로 팀 체질을 개선하는데 성공한다.
로저스 감독의 선수 영입 철학도 효율성을 극대화한 ‘머니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임하자마자 데려온 다니엘 스터리지는 이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부각됐고, 주전급인 쿠티뉴, 조 앨런, 마마두 사코, 사이먼 미그놀렛 등은 저렴한 몸값으로 리버풀 유니폼을 입었다. 대신 활용가치가 떨어진 앤디 캐롤, 디르크 카윗, 존조 쉘비, 페페 레이나 등을 과감히 내쳤다.
현재 리버풀은 3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승점 80으로 2위 첼시(승점 75), 3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74)에 앞서있다. 오는 주말 첼시와의 홈경기가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기기만 해도 사실상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24년 만에 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리버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더욱 무서운 점은 리버풀의 강세가 깜짝 이변이 아닌 예고된 성공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헨리 구단주의 확고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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