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섬 한가운데 고려 숨결 ‘천성보봉수’ 제자리 복원 안한 이유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는 숭어·대구·청어 등의 어류와 미역 홍합 바지락 등의 해산물이 풍부한 섬이다. 게다가 다양한 곡물까지 경작할 수 있는 토질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기로 소문 난 섬, 뱃길만이 유일했던 가덕도에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거제도를 잇는 길이 약 8km의 거가대교(2010년 12월)가 개통되면서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로 붐비는 가덕도, 섬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연대봉에 등산객들이 힐링 바람을 타고 몰려오고 있다. 하지만 가덕도에는 알려지지 않은 명소도 즐비하다. 임진왜란 후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천성진성, 가덕왜성, 구한말 서양인의 접근을 막기위해 세운 척화비, 일본군이 구축한 외양포진지, 고려시대 때 축조한 천성보봉수 등 그야 말로 섬전체가 요새화다.
우리 땅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가덕도가 있다. 이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연대봉(460m)에는 바다로 출몰하는 적선의 동태를 가장먼저 관찰해 내륙으로 군사정보를 보내던 최전선의 봉수대가 있다. 고려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천성보봉수의 초기설치는 기록은 없지만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헌이 전무한 고려시대의 봉수노선은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봉수 길은 제2노선 간봉의 연변봉수다. 초기에는 북쪽 성화예산봉수에만 횃불을 보냈으나, 이후 서쪽의 웅천 사화랑산봉수로 보내는 노선이 새로 설치됐다.
천성보봉수는 오랜 세월동안 자연 유실되거나 무너져 훼손 방치된 것을 1996년 4월 부산 강서구에서 연조1기를 복원하고 연조 앞에 제단 터도 만들었다. 그러나 봉수가 세워진 원래자리에서 15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복원해 놓았다. 천성보봉수의 제자리는 연대봉 정상이며, 현재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축조당시의 돌무더기가 널브러져 있다.
왜...? 무슨 이유로 관할 지자체는 제자리에 봉수대를 복원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정상에서 50m 떨어진 해안가 남쪽봉우리에도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연조 하나가 외롭게 서 있다. 봉수에서 볼 때 조망이 어려워 시야확보 차원에서 망대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복원한 봉수주변에는 최근에 관광용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는데, 등산객들에게 거가대교와 남해안 일대 경관을 감상하라는 배려차원이라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조망되는 해안풍경과 멀리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거제도의 크고 작은 섬들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천성동 마을 한가운데는 조선 중종 39년(1544)에 조선수군이 주둔했던 평지성이 있다. 현재 마을뒤쪽 경작지 주변에 읍성형태의 성벽이 잘 남아 있는데 서북쪽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의 성문이 있고, 동쪽에는 성문은 설치하지 않고 성벽만 이중으로 쌓아 놓았다. 문의 좌우와 성벽이 꺾인 지점에 성벽바깥으로 네모꼴의 치성을 올렸다. 성벽 외곽에는 해자를 파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성진성은 규모는 작지만 조선중기 축성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성곽 시설물이다.
가덕도 남쪽인 외양포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와 일본식 주거지가 지금도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현재 30여 가구에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들 주거지는 100여 년 전 일본군이 쌓은 건축물로, 헌병막사, 무기창고, 장교사택, 사병생활관 등이다.
마을 뒤쪽 산기슭에는 일본군 포진지가 축조돼 있는데, 1904년에 구축한 외양포진지는 일본군이 러일 전쟁 승전 후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위해 쌓은 것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포대사령부 비석과 산자락에 은폐된 콘크리트 진지, 탄약고, 지하벙커 시설들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외양포 마을은 현재 작은 어촌이지만 곳곳에 일본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며, 우리근대사의 아픈 기억을 생생히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봉수대 가는 길은 가덕도 선착장에서 우측 외양포 가는 방향으로 가면 연대봉으로 올라가는 안내판이 있다. 이곳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가면 40분 소요된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연대봉일대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다.
연대봉에서 내려다본다. 가덕대교 주변에는 부산신항만 건설이 한창이다. 2015년 완공목표로 부산 최대 규모의 대역사다. 또한 부산 정치권에서 이슈가 된 동남아신공항 후보지도 가덕도다. 옛 군사들이 살아있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날 정도다.
1945년 해방이후 70여 년 동안 1시간 남짓 뱃길로만 다녔던 가덕도는 이제 아름다운 옛 추억으로만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빠름이 지배하는 시대에 느림의 미학은 언제나 여유가 있어 행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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