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열기 시작한 진도 군민들 "우리 좀 살려달라"
<세월호 100일 출구가 안보인다① - 속 끓는 진도>
관광객 뚝 끊겨 생활고 타격 "지금이라도 선체인양"
“진도 사람 누구든 잡고 물어보소, 100일 넘게 배도 안 꺼내는 거 미친 짓이라 카지!”
“정부도 ‘특별재난지역’ 선포만 했지 대책이 하나 없어요. 진도 사람들만 죽게 생겼습니다.”
전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낸 세월호 침몰사태가 24일로 100일이 된다. 그 사이 실종자 구조작업이 이어진 진도 팽목항에는 분노와 슬픔, 절규로 신음했던 수백 명의 피해자 가족들이 머물다 갔다. 이제 팽목항과 진도 실내체육관에 남은 피해자 가족들은 불과 십여 명 남짓.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심신은 속절없이 타들어가지만 차디찬 바닷속에 잠긴 혈육이 ‘이제라도 돌아올까’ 잔혹한 희망고문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만큼이나 세월호 사고 수습이 장기화되면서 생계에 직격탄을 맞은 진도 군민들의 시름도 깊어지는 양상이다. 여느 때 같으면 7월부터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 진도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취재진들을 제외하고는 타지에서 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다. 이 같은 상황은 진도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본 기자가 22일 찾은 진도공용터미널에는 타지에서 온 관광객은 거의 없어 보였고 썰렁함마저 느껴졌다. 그저 터미널 대합실 내에는 대부분 진도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가족 단위, 혹은 친구 단위로 진도를 방문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여행 목적이 아닌 진도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러 온 경우였다. 이 때문에 터미널 내 자리 잡은 각종 가게들마다 손님의 온기 대신 주인들의 한숨으로만 그득찬 듯 했다.
터미널 근처에서 건어물 및 각종 진도특산물을 판매하는 이모 씨(49·여)는 “세월호 전에만 해도 하루 매출이 평균 70만~80만원은 됐는데 지금은 2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야 다 관광객 상대 장사인데 세월호 터지면서 여기 놀러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딱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이 씨는 이어 “그나마 지난주부터 아이들이 방학하면서 가족 단위로 좀 오는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 봐봐라.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원래는 성수기에 진도터미널에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했는데 이제는 (진도가) 마치 못 올 곳처럼 돼 버렸다”고 속상해 했다.
팽목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55·남)도 “20년 넘게 여기서 장사를 했는데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라며 “IMF때에도 이 정도로 진도에 사람이 없진 않았다.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팽목항에서 만난 택시기사 최모 씨(남)도 “경기가 너무 안 좋다”면서 “원래 진도에 있는 관매도 해수욕장이 워낙 깨끗하고 좋아서 여름 휴가철마다 관광객이 꽤 많았다. 근데 지금 거기에 놀러가는 사람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조도에서 톳 양식 사업을 하며 문화관광해설사도 부업으로 하고 있는 김모 씨(69·남)도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조도였다”면서 “특히, 3~4월에는 조도에 등산객들이 많이 오는데 세월호 터지기 전주까지만 해도 주말에는 오전에만 8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전했다.
김 씨는 “그런데 세월호 터지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면서 “더욱이 정부가 진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규정하고 뉴스에서도 마치 진도는 놀러 가면 안 될 곳처럼 묘사하는데 여길 누가 놀러올 수 있겠나. 정말 답답하고,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진도 군민들 “가족들 심정 이해하지만 애초에 선체인양 했어야”
이처럼 지난 3개월간 세월호가 진도 군민에게 떠넘긴 생활고의 무게는 심각해 보였다. 실제로 최근 진도군청에 따르면 진도를 찾는 관광객은 예년에 비해 70%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현재 진도 군민 상당수가 100일째 사고 수습은커녕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받고 있고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는 물론 ‘실종자 100% 수습’ 전까지 선체 인양 불가론을 고수하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심정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들의 절박한 사정은 여전히 공감하지만 선체를 먼저 인양했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신속하게 실종자 수습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수 십 년째 진도 팽목항 근처에서 뱃일을 해왔다는 김모 씨(63·남)는 “물론,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하지만 진도 바다에서 평생 살아온 나로선 선체인양을 먼저 하고, 실종자를 찾는 것이 순서라고 확실히 말 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김 씨는 “솔직히 여기 진도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봐라. 100일간 선체인양도 안 하고 저리 실종자 찾는 거 다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며 “일부는 왜 저런 헛고생들 하냐고도 한다. 팽목항쪽은 워낙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저렇게 방치할수록 (실종자) 유실 가능성이 더 높다. 애초에 선체를 인양했으면 이미 실종자 수색 다 마무리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진도 군민도 “가족들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며 “이제는 좀 인양도 하고 사태 수습 분위기를 좀 형성해야 하는데 아직도 진도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다. 정말 가족들에게는 섭섭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도 좀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물론, 팽목항에 있는 진도 군민들의 반응은 진도 군내에서 만난 시민들의 그것만큼이나 격렬하지는 않았지만 이들도 대부분 “이제는 사태 수습이 마무리 돼야 할 때”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팽목항 거주민은 “아무래도 여기서 가족들 슬퍼하는 거 보고 하다 보니 막 인양하라고 말은 못하겠다”면서도 “다만, 확실한 건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진도 군민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생활고 문제가 턱밑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답답한 게 이렇게 진도 군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 정부는 ‘특별재난지역’ 선포만 했지 뭐 하나 제대로 우리에게 지원책을 마련해 준 것이 없다”면서 “막말로 정부가 가족들에게 선체인양 요구도 못하면서 우리들에게는 수수방관이다. 정말 그냥 죽으란 소린지... (앞 일이) 막막하고 화가 난다”고 주장했다.
곁에 있던 팽목항 주민도 “내심 나도 인양하길 바란다”면서 “이제는 실종자 가족들도 좀 우리 사정 봐서 양보도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다만, 그는 “그런데 여기서 가족들 보고 있으면 막상 (그들에게) 인양하자고 말 못하겠다”면서도 “그저 우리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정부든 희생자 가족이든 어느 쪽이든 이제는 답을 좀 달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경우, 가족들 입장을 들어주겠다고 방침을 세웠다면 그것에 따르되 제발 여기서 생활하는 우리들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해 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결국, 가족들과 정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통 받는 것은 진도 군민들 뿐”이라며 “더는 이 같은 피해가 확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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