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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박주영 몰락, 스스로 자초한 선택의 귀결


입력 2014.08.09 09:13 수정 2014.08.10 16:06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월드컵서 사실상 무임승차에도 극도의 부진

2012년 런던 올림픽 병역 혜택 후 급격한 몰락

박주영은 여전히 소속팀을 찾지 못해 무적 신세다.ⓒ 연합뉴스

한때 대한민국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박주영(29)의 탈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월드컵에서 엔트리 발탁 논란에 이은 극도의 부진으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박주영은 급기야 소속팀 아스날에서도 방출되어 무적 선수가 된지 한 달이 넘었다. 새 유럽 시즌 개막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도 박주영의 진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박주영은 현재 이적료가 필요 없는 자유계약 선수 신분이다. 아스날과 월드컵에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새 팀을 찾는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월드컵 직후만 해도 터키나 프랑스행 가능성이 간간이 거론되었지만 아직까지는 감감무소식이다. 박주영의 입맛에 맞는 팀도, 박주영을 간절히 원하는 팀도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됐을까. 프랑스 리그 AS 모나코에서 활약하던 2010-11시즌까지만해도 박주영은 유럽무대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공격수였다. 그해 모나코가 2부리그로 강등당하면서 새로운 팀을 찾아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름 이적시장 막바지에 잉글랜드 명문클럽 아스날의 러브콜을 받으며 당당히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박지성의 뒤를 이어 주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때가 박주영 축구인생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이후 박주영의 커리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스날에서 머문 3년간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단 1게임 교체출전에 그쳤다. 이 기간 스페인 셀타비고-잉글랜드 2부 왓포드 등으로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데다 결별과정에서도 연이은 구설수에 휘말리며 ‘먹튀 논란’이 일었다.

소속팀에서의 경기력이 도마에 오르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입지도 덩달아 불안정해졌다. 박주영은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의 몰락을 초래한 ‘의리사커’ 논란의 핵심에 있었던 선수다.

지난 시즌 소속팀에서 단 한 경기도 풀타임 소화를 못했지만 홍명보 전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선에서 2경기 선발 출전해 113분간 무득점-1슈팅이라는 재앙에 가까운 성적표를 남기며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월드컵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던 박주영의 꿈도 물거품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박주영은 병역 혜택이 걸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 연합뉴스

박주영이 그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빛을 발한 순간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당시 모나코에서의 영주권 취득 사실이 밝혀지며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였던 박주영은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극적 승선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고 합법적인 병역면제 혜택을 얻는데 성공했다.

박주영은 자신을 옭아매던 병역논란의 굴레에서 벗어나며 안정적인 유럽무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당시 결승골을 넣은 3~4위전 한일전에서의 활약 덕분에 2년 뒤 월드컵 출전 티켓까지 사실상 예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2년의 동메달과 병역혜택 영광은 박주영에게도 한국축구에게도 더 치명적인 독이 되어 돌아왔다. 냉정히 말해 박주영은 올림픽 이후 2년간 자신의 축구인생을 위해서도, 한국축구를 위해서도 사실상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유럽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던 병역문제를 해결한 박주영은 아스날에서의 벤치생활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활로를 모색하지 않았고, 허비된 시간은 곧 경기력과 커리어의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올림픽 동메달을 따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유럽무대에서 쓸데없이 벤치만 달구고 있을 시간에 차라리 K리그로 일찍 돌아와 상무나 경찰청 등에서 복무했다면 오히려 경기감각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올림픽과 월드컵 출전까지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부질없는 가정법이다.

박주영과 동기인 이근호는 K리그 상주 상무에서 활약하는 군인 신분으로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고 골까지 넣었다. 박주영에 가려 2인자 이미지가 강했던 이근호였지만 지난 월드컵에서는 한국대표팀을 통틀어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 중 하나였다. 반면 박주영을 비롯하여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던 유럽파들의 동반 몰락은 소속팀 주전경쟁에서 밀려 경기감각이 떨어진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박주영은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특혜와 배려를 누린 선수 중 하나다. 소속팀에서 3년 가까이 경기도 제대로 나가지 못한 선수에게 올림픽과 월드컵 무임승차 티켓을 잇달아 안겨주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기 드물다.

하지만 박주영은 자신의 지상과제였던 병역혜택을 얻은 이후로 모든 면에서 기대만큼 보답하지 못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보낸 지난 2년이,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라도 꾸준히 경기를 뛰며 보낸 선수들의 2년보다 더 나은 것은 오로지 주급 차이 뿐이다. 지갑은 두꺼워졌지만 열정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동국은 유럽무대에서 실패한 케이스지만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국내무대로 돌아와 어느덧 K리그의 레전드로 거듭났다. 하지만 박주영은 지금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다. 위대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의 차이는 재능과 배경이 아니라, 헌신과 열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며 축구인생의 정점을 맞이해야할 시점에 무적 신세를 떠돌고 있는 박주영의 현 주소는 그가 지금껏 자초해온 선택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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