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판 마르바이크 '벼랑 끝' 한국축구…서로 구원?
남아공월드컵 당시 결승 견인..클럽에서도 유로파 정상 경험
최근 ‘실적’ 안 좋고 대대적 개혁 필요한 한국 사령탑은 모험 지적도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62) 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네덜란드 언론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8일(한국시각)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거스 히딩크,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백에 이어 네덜란드 출신으로는 다섯 번째로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될 것”이라며 “코치진도 네덜란드 출신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지난 6일 축구회관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과의 협상 과정을 설명하면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있으며 일주일 안에 그의 대표팀 감독 선임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네덜란드 현지 언론에서 이와 같은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한국행은 상당히 유력하다.
축구협회가 판 마르바이크 감독을 우선협상 대상 지도자로 낙점한 배경은 역시 단기전에서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앞세워 네덜란드에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안겼던 2010 남아공월드컵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유럽 예선을 8전 전승으로 통과한 것은 물론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에서도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오른 뒤 토너먼트에서도 슬로바키아, 브라질, 우루과이 등을 연파하며 네덜란드를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결승에서도 객관적인 전력상 절대 열세라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에도 탄탄한 팀 조직력을 앞세워 스페인의 톱니바퀴와도 같은 정교한 ‘티키타카’ 축구와 연장 혈투를 펼친 끝에 0-1 석패, 패장이었지만 승장이나 다름없는 찬사를 들었다.
월드컵에서의 눈부신 성과를 앞세워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2010년 한 해 동안 치른 17차례 A매치에서 15승을 따내는 동안 패배는 단 한 차례만 기록하는 경이적인 승률을 기록했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서 지휘봉을 받아 들었던 지난 2008년 8월부터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 직후인 그해 여름 지휘봉을 내려놓기 전까지 전체적인 기록을 살펴봐도 52차례 A매치에서 34승10무8패(승률 65.38%)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클럽팀의 감독으로서도 2001-02시즌 페예노르트 감독으로서 팀을 UEFA컵 정상에 올려놓기도 한 경험이 있다. 축구협회 입장에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커리어임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 직후 송종국을, 그리고 이후에는 이천수를 자신이 감독으로 있던 페예노르트로 영입하며 사제의 인연을 맺기도 해 국내 팬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지도자다.
하지만 판 마르바이크가 실제로 한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된다면 한국 축구의 입장에서나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입장에서 모두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게 되는 하나의 큰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2012년 유로대회 이후 최근까지 내리막길을 걸어 온 그의 성적 때문이다.
유로 2012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무너지며 감독직에서 물러난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지난해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의 감독으로 활약했지만 팀이 사상 첫 강등 위기에 몰리면서 경질됐고, 현재까지 소속팀이 없는 상태로 지내왔다.
최근 2-3년의 성적을 놓고 지도자의 능력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2014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다시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내몰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세계 축구와 거리를 확인한 한국 축구에 지도자로서 최근 내리막길을 걷어온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제2의 히딩크’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지만,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맡은 시점은 그가 감독으로서 능력과 성적 면에서 정점에 향하고 있거나 정점에 서 있을 때였지만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최근 2-3년 간 ‘감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 축구의 가까운 미래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과 긴 호흡으로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리빌딩 하는데 판 마르마이크 감독을 한 명의 파트너로서 영입하려고 한다면 크게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당장 내년 초 아시안컵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과 본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뚜렷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판 마르바이크 감독을 영입한 것이라면 분명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입장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에 오르는 일은 그의 축구인생 전체를 건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외국인 지도자 가운데 ‘아름다운 이별’을 경험한 지도자가 히딩크 감독 한 명뿐이라는 사실부터가 부담이다. 이 사실 속에는 한국 축구 역사에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되기가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대표 감독보다도 어렵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지도자로서의 성품이나 사고방식, 태도 등이 이방인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게는 대표선수 차출에 협조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한 K리그 구단들을 비롯한 한국 축구계의 지원 내지 지지 속에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훗날 한국 축구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역시 성적이다. 최근 2-3년간 네덜란드 대표팀과 함부르크에서 지도자로서 부진했던 판 마르바이크 감독에게 한국 대표팀은 하나의 큰 기회이자 한편으로는 하나의 큰 함정이다.
한국 축구는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세계 정상급 수준의 축구와 상당한 격차가 벌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한국 축구의 수준은 다시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와 같은 한국 축구의 상황을 다시 세계 축구의 큰 흐름 속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역할이고, 그 첫 시험대는 내년 초 아시안컵이다.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아시안컵에서 기대 이하의 경기나 성적을 낸다면 조기 경질 요구의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축구인생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 반대의 상황을 그가 단기간에 대표팀을 장악하고 국제대회에서의 경기력이나 성적이 팬들과 축구계가 납득할 만한 수준을 기록한다면 그는 축구계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러시아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국제적인 평판도 오름세로 반전을 이룰 수 있다.
과연 한국 축구와 판 마르바이크 감독이 서로를 위해, 그리고 각자를 위해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선택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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