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시린 가을일수록 달달한 로맨스가 싫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로맨스 드라마 참패 극장가엔 공포물 범람
최근 한 시청률조사에 따르면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4.7%, '아이언맨' 5%, '내 생애 봄날' 8.8%이었다. 말 그대로 한자릿수 시청률이다. 종영한 '연애의 발견'은 7.6%였다. 역시 한 자릿수 시청률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극장가에는 예전부터 로맨스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려야하지만 그런 현상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 안에 로맨스를 녹여내고 있다.
오히려 가을철에는 공포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올해는 '마녀', '콰이어트 원' , '애나벨', '맨홀', '분신사바저주의 시작' 등이 이에 속한다. 올해에 이렇게 공포물이 많이 등장한 것은 몇년 전부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9월 중순 개봉한 '컨저링'은 공포영화임에도 226만명을 동원했다. '숨바꼭질'은 공포스릴러 장르인데, 560만명이나 동원했다. 2012년 '이웃사람'도 원혼 공포 스릴러인데도 가을에 이르러 243만여명을 동원했다.
이유에 대한 분석은 다양했다. 우선 여름철에는 대형 블록버스터가 한국과 할리우드를 막론하고 제작 개봉되기 때문에 공포물이 설 자리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뒤늦게 좋은 작품이 빛을 보는 셈이기도 하다. 장르물은 대형 흥행은 기대하기 힘드니 말이다. 공포물을 여름에 반드시 봐야한다는 법칙은 없는 셈이고, 관객이 공포물을 통해 더위를 물리치려한다는 분석도 힘을 잃고 말았다. 오랫동안 공포물이 볼거리와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존립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제 다양한 블록버스터가 공포의 영화의 역할을 대체한 셈이다.
이제 가을에는 로맨스물이 대세를 이룬다는 법칙도 깨어졌다. 슬픔과 비극을 강조하는 멜로 드라마 장르는 힘을 못쓰고 있고, 재미를 더욱 가미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두각을 나타냈다. 판타지 로맨스가 트렌드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마저저도 답습적이 되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스토리텔링의 한계에 이르렀다. 스토리 자체에 승부를 걸기 때문에 불리한 면도 있다.
로맨스 자체의 스토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은 효용이 떨어진다. 로맨스 스토리는 인터넷에 얼마든지 널려있기 때문이다. 가을하면 로맨스라는 쏠림의 현상도 폭발적 흥행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맨틱 영화는 장르 자체가 대형 흥행작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만고이래 로맨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창작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고도의 차별성을 요구받는다. 무료로 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비교해 비싼 유료 극장영화가 가진 경쟁력이 있으려면 다른 볼거리와 흥미거리가 필요하다.
이 때문인지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하듯 스릴러, 코미디, 누아르, 판타지가 결합하는 가운데 로맨스가 존재하고 있다. 융합의 와중에 로맨스가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사랑은 모든 영역의 중심에 있는 법이다. 따로 그것만을 분리해낼 수 없을 지 모른다. 어쩌면 관객이 극장에서 로맨스 한 가지만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콘텐츠 소비동기가 복합적으로 변했는지 모른다. 복합적인 콘텐츠 소비 동기는 하나의 콘텐츠에서 다중의 욕망을 대리충족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영화 '인간중독'과 '마담뺑덕'은 송승헌과 정우성이라는 걸출한 남성 스타와 정사신을 무기로 관객을 공략하려 했다. 그런 무기가 힘을 발휘할지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될 것이다. 만약 출연 배우의 개런티가 너무 비싸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순수 로맨스 장르는 저비용을 들여 저효과를 내지 않도록 작품성에 초점을 기울이는게 나을 것이다. 이는 평가의 기준이 달라짐을 말한다. 흥행성을 말하지 말고 작품성을 말해야 한다. 애초에 해외의 영화들이 다양성 영화나 예술 영화의 장르에 로맨스를 포진시켜 오히려 역흥행을 하고 있는 점은 이러한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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