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자살보험금, 엇갈린 판례 보니…
김영란 전 대법관, 과거 자살보험금 소송에서 "약관대로 지급하라"고 판시
최근 대법원 판례 "자살 재해로 볼 수 없고, 약관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생명보험사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이 법정싸움으로 비화될 분위기다. 하지만 재해사망보험 특약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공존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9월 대법원은 교보생명의 '차차차 교통안전보험' 보험금 지급과 관련 "약관 내용이 명백하지 못하거나 의심스러운 때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약관작성자에게 불리하게 제한해석하여야 한다"며 재해사망특약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장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다. 자살보험금 관련 3건의 대법원 판례 중 소비자의 손을 들어준 유일한 재판장이다.
최근 논란이 된 약관 해석을 두고 김 전 대법관은 판결문에 "2년이 경과한 후에 자살하거나 자신을 해침으로써 사망 또는 고도의 장해상태가 되었을 경우에 해당하면, 특별히 보험사고에 포함시켜 보험금 지급사유로 본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재해사망보험 특약 내용을 소비자 위주로 해석한 셈이다. 이는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금융감독원의 입장과 일치한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지난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07년 판례를 언급하며 "생명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4월까지 개정되기 전 약관을 보면, 자살면책 기간인 2년을 넘긴 고객이 자살하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기로 돼 있다. 이 같은 약관이 찍힌 채 판매된 상품만 281만건에 이른다. 대개 재해사망보험금은 일반사망보험금보다 2~3배 정도 많다.
생보사는 약관 표기 실수라며,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생보사가 면책을 주장하는 근거도 대법원 판례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은 한화생명의 '대한변액종신보험' 가입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한 이후 보험금 지급과 관련 "(약관에) 재해를 원인으로 한 사망 등으로 제한돼 있어 자살이 보험사고에 포함되지 않는 재해사망특약 등에는 준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하며 보험사의 면책 주장을 받아들였다.
특히, 약관 표현이 애매한 경우 가입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상, (중략)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축협공제의 '슈퍼재해안심공제계약'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판결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생보사는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기흥 ING생명 부사장은 "대법원 판례가 상충한다"면서 "또한, 사회 통념상 자살을 재해래 보지 않고 학계에서도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이 부사장은 이어 "객관적인 법조계 판단을 받아본다는 게 저희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생명과 ING생명, 교보생명 등 10개 생보사는 지난달 말 미지급 자살보험금 금감원 민원에 대해 지급을 거부하고, 법원에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ING생명은 이와 별개로 자살보험금 미지급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과 관련 행정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자살로 미지급된 재해사망보험금 건수(지난 4월 기준)는 삼성생명(713건), ING생명(471건), 교보생명(308건), 한화생명(245건) 순이다. 금액으로는 ING생명(653억원)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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