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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낳으면 세금내라"고 '농담'하는 정부 관계자


입력 2014.11.13 16:16 수정 2014.11.13 16:27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국민 정서와 멀어도 한참 먼 관료들의 '입'

서울 시내 한 병원의 신생아실.ⓒ연합뉴스

먼저 결혼한 친구들로부터 ‘결혼하면 좋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듣는다. 대답을 내놓기도 전에 친구들의 신세 한탄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 분유 값에 기저귀 값, 집 월세, 기타 생활비 등등 먹고 살기 힘들다는 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몇몇은 벌써부터 첫돌배기 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한다.

‘혼자 살기에도 벅찬데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월급 모아 집 사는 데 20년은 걸린다던데’, ‘아이를 가지면 집사람은 직장을 그만둬야 할텐데 생활비는 어쩌나’, 일부 저소득자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힘들고, 출산이 힘들다. 여기까진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최근 ‘싱글세’ 논란이 뜨겁다. 구체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은 1~2인 가구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87명. 양육수당을 비롯한 복지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10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싱글세 도입 문제는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언급됐다. 이 관계자는 지난 11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산도 부족하고 정책 효과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 지원만으로 저출산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싱글세와 같은) 페널티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복지부는 지난 12일 “싱글세 등과 같이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싱글세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앞으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은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는 듯 보인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 조세정책운영계획수립 보고서 10페이지에 ‘고기, 과일, 야채 등과 같은 생필품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하는 문제를 전방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던 점을 근거로 들어, 싱글세 도입 문제도 실제 검토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론도 냉담하다. ‘안 그래도 세금부담으로 예민한 시기에 저런 걸 농담 식으로 흘리는 것 자체가 정부쪽에서 서민들의 증세 스트레스를 잘 공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간보기 정책. 미리 살짝쿵 언론에 흘려보고 분위기 안 좋으면 오해다, 농담이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흔한 반응이다.

설령 정부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바로 정부 고위관계자의 가벼운 입이다.

싱글세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도 거론됐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비판여론이 빗발쳤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싱글세 문제가 재등장했을 때엔 크게 이슈화하지 않았다. 당시 이 문제가 다뤄졌던 곳은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 주최 토론회였기 때문이다. 이 토론회는 크게 관심받지 못 하고 단발성으로 끝났다.

정책과 관련해 정부라는 기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해 아날로그 무선전화기 이용자들에 대한 과태료 부과 논란이 불거졌을 때, 올해 경범죄 과태료 인상설이 나돌았을 때에도 여론은 동요했다. 모두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지만, 대중은 겁을 먹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정부라는 단어의 권위가 이렇다.

이런 상황에 농담이든, 의미가 와전됐든 정부 관계자가 직접 싱글세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은 문제가 크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보도나 소문에도 정부라는 말만 들어가면 동요하는 게 여론인데, 해당 정부부처의 국장급 이상 고위관료가 직접 발언한 것이라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특히 이번 싱글세 논란은 대중에 대한 정부 관료들의 공감능력이 얼마나 뒤떨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정책을 고려하는 것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별개이다. 왜 결혼을 못 하고 아이를 못 낳는지 한 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해봤다면, 페널티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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