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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쓰러진 2008년 보안부 국장 3명 한날 한시 숙청 왜?


입력 2014.12.12 10:24 수정 2014.12.12 10:56        김소정 기자

<북 3대세습 해부②>정치국장 조직부국장 선전국장 짤려

갈등 빚은 무역국 승리로 '시위진압 장비' 독일서 수입

북한 인민보안부에 건립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에 바치는 김정은의 화환을 병사들이 나르고 있다.ⓒ연합뉴스

북한의 숙청사에는 김일성 일가가 ‘일제 청산’을 내세워 권력을 잡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젊은 시절의 김일성이 15년간 항일전쟁을 벌인 것으로 내세워 ‘백두혈통’을 만들어냈고, 대대로 백두혈통을 ‘항일빨치산 혈통’이 보좌하는 식으로 북한 지도부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김정일이지만 어린 나이의 김정은으로 권력을 세습하면서 간부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있다.

김정일은 2010년 9월 당대표자대회를 열고 빨치산 출신으로 김일성을 도왔던 최현의 아들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임명은 2년 뒤로 미뤄진다. 바로 당시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한 군부 간부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친 것이다.

당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약 1년 전으로 2년 전 이미 한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져 80여일간 공개석상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2010년 당대표자대회에서는 김정은을 비롯해 여동생 김경희, 최룡해와 현재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1부부장인 김경옥 등 4명에게 ‘대장’ 칭호만 수여했다.

이와 관련해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이들에게 대장 칭호만 수여하는 것에도 군부 내 불만이 컸다”고 했다. “군의 중견 간부들 중심으로 ‘우리는 30~40년간 피와 땀으로 군복을 적셔도 겨우 상좌, 대좌에 불과한데 어떻게 단 하루도 군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대장을 줄 수 있냐, 애들 군사놀이인가’ 하는 말도 돌았다”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 말기 북한 수뇌부는 이런 간부들의 반발을 예견한 것일까. 김정일이 쓰러졌던 2008년에는 보안부의 정치국장, 조직부국장, 선전부국장이 한날 한시에 숙청되는 사건도 있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9월부터 40여일간 잠적했을 때 노동당 간부 12명이 숙청되고, 군단 간부 167명이 강등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보안부 간부 세명이 헌꺼번에 숙청된 사건의 배경에는 당시 북한 내부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돼 더욱 주목된다.

사건은 당시 보안부 정치국과 무역국 사이의 의견 대립으로 시작됐다. 북한 내부가 어수선하던 시기에 보안부 정치국장은 보안원들의 사상교양사업을 강조하면서 필요한 물자를 수입해오라고 무역국에 지시했다.

하지만 무역국장은 북한 주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예견해 거기에 필요한 장비를 사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면 맞섰다.

같은 보안부 안에 두 개의 국이 수입 물자를 놓고 대립을 하면서 무역국장이 중앙당에 사건을 민원 제기했다고 한다. 이 민원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나선 인물은 지금도 중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맡고 있는 조연준이었다.

조연준이 지휘하는 검열조사단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김정일에게 보고한 내용은 ‘무역국장의 견해가 옳다’는 것이었고, 당시 병중에 있던 김정일은 ‘시위나 항쟁에 대한 대비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높이 사 정치국장을 비롯해 정치국 간부들을 모두 해임시켰다.

소식통은 “이 사건 이후 보안부 무역국에서 김정일의 비준을 받고 중국을 통해 독일산 시위진압용 장비들인 가스총, 전기곤봉, 방패막이, 투구 등 5000여조 수입했다”고 말했다.

또한 2010년 국방위원회 인민보안부 내무군사령부가 조직됐다. 정보통은 “김정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시위를 진압할 목적으로 보안부 내 내무군사령부를 조직하고 산하에 3000명 규모의 기동순찰대를 조직했다”면서 “이들을 평양시 각 구역에 분산 배치해 비상대기 근무를 시켰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이 중국에서 시위진압용 장비를 사들인 사실은 뉴스위크 등 외신을 통해 먼저 보도된 사실이 있다.

소식통은 “2008년 초에 벌어진 보안부 내 간부 세명을 한꺼번에 숙청한 사건은 보안부가 조직된 이래 처음 있는 중대 사건으로 회자됐다”고 전했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이어지는 시기에 외부에서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크고 작은 숙청이 벌어졌으며, 이때 많은 간부들과 군인, 평양시민들 사이에 ‘더 이상 현 정권을 묵과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일었다”는 것이 소식통의 주장이다.

소식통은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는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총구를 돌려댈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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